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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법 개정안 부결 ‘후폭풍’…정부·국회 “조속한 시일 내 재추진”

김형욱 기자I 2022.12.09 13:25:10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 법안 다시 제출
정부도 긴급회의 열고 대책마련 모색
불확실성 속 전기료 정상화 논의 ‘탄력’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자본잠식 위기에 빠진 한국전력(015760)의 채권(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기 위한 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국회에선 부랴부랴 법안을 다시 제출해 연내 임시회 통과를 추진키로 했고, 정부도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야 모두 국내 전력 공급을 도맡은 한전의 부실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는 만큼, 재추진 성사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불러일으킨 전기요금 정상화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14차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찬성 89인, 반대 61인 기권 53인으로 부결되고 있다. (사진=뉴스원)
◇여·야 “조속한 시일 내 개정 다시 추진”

여야는 9일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한 한전법 개정을 연내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법안 처리를 해주겠다고 하니 다시 발의해서 조속한 시일 내 공백이 없게 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중위) 위원장을 맡은 윤관석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법안이 최대한 빨리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의결되게 해 시장 불안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모두 전날 한전법 개정안 부결이 당론이 아니고 조기 통과 필요성에 공감한 것이다. 실제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부결 직후 한전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한전은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 위기 속 발전연료비가 급등하면서 1~3분기 누적 21조8000억원이란 유례없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한전은 현재 이 적자를 한전채를 발행해 메워 왔는데, 내년 4월이면 자본금·적립금의 최대 2배 이내로 묶인 한전법 때문에 그 한도가 누적 발행액을 초과하는 게 확실시된다.

한전은 현재 누적 한전채 발행액이 72조원인데 적자 누적으로 내년 4월이면 올해 91조8000억원이던 발행가능 한도가 약 40조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에 여야 합의로 그 한도를 5배, 유사시 6배까지 늘린다는 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이미 여야 합의로 산중위·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올랐는데 예기치 않게 부결된 것이다.

한전의 부실화는 국가 전력망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쉽사리 예상하기 어려운 ‘해프닝’이었다. 일찌감치 전기료 등 시장 정상화가 우선이라며 이 법안에 반대해 온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이 본회의에서 한 경고성 반대 토론이 예상 이상의 파급력이 있었던 것이다.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하려면 찬성이 과반을 넘어야 하는데 203명 중 89명만이 찬성했다. 나머지 61명은 반대, 53명은 기권했다.

◇정부, 관계부처 긴급회의 열고 대책 논의

정부도 비상에 걸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전은 9일 오전 관계부처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한전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차기 임시회 중 이 법의 본회의 통과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국회가 한전법 개정안을 재추진하고 나섰지만 한전의 한전채 발행 한도가 막히는 내년 3월 이전까지 개정이 이뤄진다는 보장은 없다. 전날 본회의에서 예상 외 부결 결과가 나온데다 이날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국면 속 2023년도 예산안마저 여야 간 타협점을 찾지 못해 시한을 넘길 위기에 놓였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가 9일 서울 여의도 한전남서울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한전법 개정안 부결관련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있다. (사진=산업부)
내년도 전기료 인상 논의도 불이 붙게 됐다. 정부 대책회의 중 전기요금 정상화 로드맵을 조기 수립기로 했다. 이번 법안 부결, 한전의 적자 폭증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정부가 발전연료비가 2~3배 폭등하는 속에서도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료를 억제해 온 측면이 있다. 전력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줄곧 전기료 정상화와 전기료 결정 체계 독립성 강화를 주장해 왔으나, 기재부는 최근의 물가 폭등으로 이를 억제해 왔다.

이 결과 올해 발전연료비는 평소의 2~3배 올랐으나 전기료는 약 15~20% 오르는 데 그쳤고, 한전은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밑지며 전력을 판매했다. 한전이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 발행량을 대폭 늘린 결과, 국내 채권 시장에서 돈줄이 마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양이 의원의 본회의 반대 의견에 많은 의원이 공감한 것도 현 상황을 한전채 발행량 확대만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그의 주장이 타당한 측면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다만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때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 인상 요인을 키워 놓고 요금 인상에는 소극적이었다며 비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전기료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으나 국제 에너지값이 폭등한 올 3월까지 사실상 이를 활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인상 자체는 불가피하다. 관건은 인상 폭이다. 단기간 내 한전과 전력산업계를 정상화할 정도의 인상을 단행하는 건 쉽지 않다. 정부와 한전은 올해 이미 전기료를 15~20% 가량 올렸다. 발전 연료비 급등에는 못 미친다고는 하지만 최근 10~20년래 가장 가파른 인상 폭이다. 또 한전의 적자 상황을 완전히 해소하려면 여기에서 30~50%는 추가로 올려야 한다는 게 전력산업업계의 추산이다. 안 그래도 물가 안정에 어려움을 겪는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가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인상률이다.

증권사들은 정부의 전기료 현실화 여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한전이 올해 31조원(증권사 전망치 평균)의 적자를 내는 데 이어 내년에도 12조원대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적자 폭이 줄어든다지만 역대급 적자 상황 자체는 내년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원유·가스·석탄값이 최근 내리고 있다지만 여전히 예년대비 높은 상황에서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현 에너지 위기를 촉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어지고 있다.

박일준 산업부 제2차관은 “한전의 재무위기는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할 수 있는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협력해야 한다”며 “한전도 자체 유동성 확보 노력과 재정건전화 자구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에서 시민이 전력량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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