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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영산강 유역의 고고학적 문화를 밝히고자 2006년부터 나주 복암리 유적 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해 조사 당시 인근 지역에서 백제 기와와 함께 고려시대 행정지명인 ‘회진현관초’ 명 고려 기와가 출토된 바 있다. 이를 통해 백제, 고려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나주 복암리 유적 일대에 관청 등 중요 시설이 자리했다는 추정이 가능해졌다.
올해 발굴조사에서는 지난해 조사 성과와 부합하는 관청 건물지가 3동 이상 확인됐다.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태선문의 기와, 해무리굽 청자, 상감청자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나말여초부터 고려 중기까지 사용된 건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2호 건물지는 대지 평탄화 작업을 한 후 건물의 기초가 되는 적심과 초석을 설치한 구조다. 현재 남아 있는 양상으로 보아 정면 10칸, 측면 2칸 규모로 추정된다. 길이는 약 20m에 이르는데 이 지역에서 이 정도 규모의 고려시대 건물지가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2호와 3호 건물지에서는 ‘회진현관초’ 명을 비롯해 ‘대장표명’ 등이 새겨진 다량의 명문기와가 출토됐다.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명문기와가 현재까지 복암리 일대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관청 자재용 물품으로 보인다. 이 일대가 당시 지역을 관할하는 관청지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고 추정했다.
발굴조사 구역 남쪽 외곽에서는 2단으로 쌓은 석재 위에 기와를 설치한 시설도 확인됐다. 이 시설은 현재 조사된 건물지보다 더 높은 곳에 건물을 설치하기 위한 기단으로 보이며 건물지 주변에 훨씬 더 많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전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나주 복암리 일대를 지칭하는 ‘회진현’이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 처음 등장한 뒤 고려 때까지 사용됐다. 회진현은 영산강 초입에 위치해 있어 당시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지금까지 뚜렷한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그 실체가 불분명했으나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주요 관청 건물지가 확인돼 보다 입체적인 고려 시대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