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러가 약세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속도는 심상치 않다. 전날(6일) 하루 사이에 터져나온 산유국들의 원유 결제통화 변경 움직임과 호주의 금리인상 결정 모두 형편없이 추락 중인 달러의 입지를 재각인시켰다.
이미 달러 약세를 거스를자도, 애써 막으려는 자도 없다. 위기의 당사자인 미국 조차도 소비가 뚝 끊기자 달러 약세에 잠시 기대어 가겠다는 심산이다. 문제는 달러가 붕괴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느냐다. 미국을 비롯해 달러와 이해관계가 맞물린 쪽의 저항이 만만치 않겠지만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
◇ 약세 수순 밟는 달러..잦은 기폭제에 속도 강화
2002년부터 매년 꾸준히 지속된 달러 약세. 달러는 2002년부터 2008년4월 사이 무려 41%나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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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달러를 달러 외 통화로 구성된 바스켓으로 대체하고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마저 비밀회동에 참여했다는 논의 내용은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었고, 약세 소용돌이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했던 달러에 일격을 가했다. 게임의 룰을 아예 뒤바꿀 수 없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파급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원유거래국가들은 물론 달러를 주요 통화로 활용하는 국가들의 불만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달러가 발목을 붙잡지만 후일을 위해서는 달러를 손에서 서서히 놓는 것이 필요함을 누구나 안다.
기축통화로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미국 달러의 상황은 가장 최근의 영국의 파운드화는 물론 스페인왕국의 레알레화와 로마제국의 디나르화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 몰락 쐐기 박을 요인만 즐비해
호주의 금리인상 역시 달러 약세를 가속화시킬 구체적인 촉매로 등장했다. 금융위기 중에 양적완화를 통해 공격적으로 풀었던 유동성으로 가뜩이나 압박을 받고 있는 달러는 남들보다 뒤쳐진 미국의 경제회복과 낮은 저금리로 인해 약세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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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국의 더딘 금리 인상이 점쳐지며, 저금리에 자금을 빌려 고금리 자산을 사들이는 `캐리 트레이드` 통화로서의 인기까지 달러에 배가됐다. 달러 캐리가 고착화될 경우 이 역시 향후 약세 흐름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요인이다.
이미 달러 차입금리는 가장 통상적인 캐리 통화인 엔마저 하회하면서 본의 아니게 캐리통화로서의 자리를 꿰차게 됐다. 지난 3월 이후 달러는 엔화와 스위스 프랑 대비 11% 이상 급락했다.
◇ 아무도 원치 않는 폭락에 "방심은 금물"
당장 달러가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한다고 가정해보자. 달러의 침식은 용인 가능하지만 달러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득을 볼 주체는 사실상 아무도 없다.
달러가 전체 외환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86%에 달하며, 전세계 중앙은행 보유고 전체에서 차지하는 달러 비중도 63%다. 이같은 이유로 미국은 여유를 부리고 걸음마 식의 달러 후퇴를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JP모간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의 보유통화 다각화가 나타나면서 매달 1000억달러까지 보유고를 늘리는 은행들은 이 가운데 절반만큼만을 달러로 채우고 있다.
달러의 몰락이 아주 수십년뒤에 일이고, 설사 몰락의 끝이 완전한 폐허가 되진 않더라도 미국이 여유를 부릴 시간은 많지 않을 수 있다. 아직까지 달러하락 속도의 키를 미국이 쥐고있는 듯보이지만 이미 미국에서 나머지 국가들도 바통이 넘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