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리뷰 신시컴퍼니 '콰이어 오브 맨' 펍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男 합창단원 9명 관객도 무대 오르고 맥주 마시며 공연 참여 화려한 서사보다 '함께하는 기쁨' 강조
[최승연 공연칼럼니스트] 뮤지컬에서 서사는 넘버를 이어 붙이는 접착제다. 선형적이든 비선형적 플롯이든 넘버가 배치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흐름이 필요하다. 특히 국내에서는 ‘서사성’이 두드러지는 뮤지컬이 선호되기 때문에 서사의 논리와 인과관계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의 한 장면(사진=신시컴퍼니)
‘콰이어 오브 맨’ 한국 라이선스 공연은 이런 측면에서 ‘다른 것’을 향한 지향을 보여준다. 공연은 ‘더 정글’이라는 영국식 펍(pub)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9명의 남성 합창단원의 일상을 다룬다. 비록 무알코올일지라도 진짜 맥주가 제공되는 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일상이 뮤지컬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다.
뮤지컬이 포착하는 일상은 대단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동네의 작은 선술집에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소란스럽고 떠들썩한 풍경을 극장에 옮겨놓은 듯 자연스럽고 소박하다. 펍은 영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으로 지역 주민들이 모여 술과 음악, 춤과 노래를 통해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뮤지컬은 펍의 장소성을 극 공간으로 활용하고 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9명의 원형적 캐릭터로 스케치해 합창단원을 구성했다. 이들은 펍 ‘더 정글’에서 유명한 기성 노래를 편곡해서 부르고, 사랑에 애태우고, 별 것 아닌 취미 활동을 지속하고, 함께 TV로 스포츠를 보며 남성적 우정을 불태운다.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의 한 장면(사진=신시컴퍼니)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이런 공간과 인물 배치가 빚어내는 정서와 감정을 ‘가치 있는 것’으로 구현하는데 있다. 공연은 서사성보다 ‘함께함으로써 빛나는’ 일상의 정서에 집중한다. 배우는 합창단원이 되어 화음과 리듬, 퍼포먼스를 ‘함께’ 조율하고, 관객은 일방향적인 관극이 아닌 ‘직접 경험’을 통해 감각을 일깨움으로써 극장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확장된다. 공연이 관객에게 조금 다른 관람 방식을 요청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위에서 배우와 자연스럽게 만나고, 극장이 제공한 맥주를 마시며, 객석에 내려온 배우의 손에 이끌려 장면을 함께 완성해 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는 극장을 일상적 공간으로 바꾸려는 정교한 기획이 스며들어 있다.
공연이 끝날 때 즈음 펍은 집이 되고, 배우가 도달하는 곳은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배우들은 모두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호명되며, 진짜 집 이야기를 이 공간에 겹쳐놓는다. 이를 통해 공연이 최종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가족’이다. 공동 창작자 닉 두드슨과 앤드루 케이가 2017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시작한 이 기획은 대학로에서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다만 공연의 핵심인 영국 문화가 한국 공연의 여러 맥락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 지점들은 과제로 남는다. 이소라의 노래 ‘제발’이 극장에서 더 힘차게 울려 퍼질 수 있기를. ‘콰이어 오브 맨’은 내년 1월 3일까지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투자증권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