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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처음 외국계 기업으로 옮겼고 그 전에 영어 학원을 다니거나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아는 영어는 중고등학교 때 시험을 위해 공부한 옛날식 문법 위주였고 대학에서도 영어를 제대로 익힐 기회가 없었다. 이 상태에서 외국 사람들이 실제 회사 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영어 표현들이 무척 낯설었다. 처음 보는 관용구들은 단어를 보고 의미를 짐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잠깐 의견을 나눠 보자는 ‘터치 베이스’(touch base), 인쇄물이 아닌 컴퓨터 파일을 뜻하는 ‘소프트 카피’(soft copy), 미리 알려주는 ‘헤즈업’(heads-up)과 같은 표현들은 흔히 등장하는데 뜻을 유추할 수가 없었다. 참고라는 뜻의 FYI(For Your Information), 오늘까지를 의미하는 EOD(End of Day) 같은 약자들도 하나씩 배워 나가야 했다.
고맙게도 외국에서 자란 동료들이 많이 도와 줬다. 한 직원은 영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될 때까지 1년 가까이 회의 때마다 통역을 해 줬다. 영국에서 온 친구는 ‘브라운 백 런치’(Brown-bag lunch)가 점심시간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강의를 듣는 모임이고 도시락을 넣는 갈색 종이봉투에서 그 뜻이 유래했다는 것도 알려 줬다. 학창 시절에 브라운 백을 들고 다니면 약간 촌스럽게 보기도 했다는 경험담도 덧붙였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많은 다른 동료는 필자가 서툴게 쓴 이메일을 서양 사람들의 시각에서 구조와 표현을 고쳐 주기도 했다. 이들이 없었으면 외국계 기업에서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양에서 자란 사람들이 이기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필자도 한국에서 지식과 경험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영어 듣기와 말하기를 30대 후반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듣기가 무척 어려웠다. 대사(ambassador)를 초대하자는 것을 투자자(investor)로 듣고 카피(copy)를 달라는 것을 커피(coffee)와 헷갈릴 정도였으니 부끄럽고 처참한 수준이었다. 말하기는 비슷한 표현을 반복하며 외우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 듣기는 나이 들어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할 말을 생각하느라 집중해서 듣기도 어려웠다. 요즘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영어에 다양하게 노출되고 어학연수도 다녀온 경우가 많아 듣기도 잘하고 발음도 좋아 부럽다. 인공지능(AI)과 영어로 대화하거나 AI 기반의 영어 학습 앱을 사용해서 실력을 늘려가는 사람들도 많다. 어린이 캠프를 운영하면서 참가 학생들이 우리말보다 영어로 된 개념을 더 잘 이해하고 외국인 멘토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
특히 사무실에서는 AI 덕분에 영어 실력으로 인한 업무 성과 차이가 크게 줄었다. 영어 자료도 쉽게 검색하고 보고서도 AI가 알아서 영어로 만들어 주고 이메일에 첨부된 수십 페이지의 영어 자료도 순식간에 정리해서 답장할 내용까지 만들어 준다. 영문 발표 자료도 통번역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만들고 수정할 수 있다. 영어 회의도 실시간 번역되고 회의록이 생성된다. 이제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라고 핑계 대기가 어렵고 반대로 영어만 잘하는 사람은 설 땅이 점점 좁아진다. 진짜 업무 능력과 통찰력을 보여 주고 평가받는 시대가 돼 가고 있다.
![시청으로 모이라고?[최기훈의 외국기업 생존기]](https://image.edaily.co.kr/images/photo/files/NP/S/2026/11/PS2611070031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