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 광장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태국인 여행객 납다오(37·여)씨는 눈물을 쉴 새 없이 닦으며 분향소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방콕 출신 납다오씨는 “이번 사고로 태국인 희생자도 발생해 태국에서도 보도가 많이 됐다”며 “친구들이 살았냐, 문제 없냐고 연락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여행이 이번으로 6번째인데 그간 좋았던 추억이 참사로 다 묻힌 것 같아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올해는 부디 모든 한국인들이 별 탈 없이 지내길 바란다”고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신년을 앞두고 일어난 대형참사로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새해를 맞은 이날, 시민들은 연휴에도 짬을 내 서울 시청 분향소를 찾았다. 검은 옷을 입고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다사다난한 2024년을 보내고 맞은 2025년인 만큼 올해엔 개인의 성취보다는 사회의 안녕을 바란다고 했다.
|
서울시는 지난 달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179명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청 본관 정문 앞에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지난달 31일부터 운영 중이다. 합동 분향소는 새해를 맞은 이날도 오전부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이날 분향소에는 길게 줄을 설 만큼 많은 사람이 몰렸으나 어디에서도 대화 소리는 쉽게 들을 수 없었다. 줄을 기다리는 조문객들은 대부분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눈물만 닦고 있었다.
6살 딸의 손을 꼭 잡은 채 조문을 마친 김동욱(40)씨는 “우리 가족도 비행기 타고 연말 일본 여행을 다녀왔는데 우리같이 아이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도 타고 있던 사고라 더욱 안타깝다”며 “예전 같았으면 새해 들어 부자되고 싶다거나 승진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을 텐데 올해는 그저 건강하게 보내도록 아이랑 묵념하고 헌화도 같이했다”고 말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 중엔 김씨처럼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조문객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시민들은 새해 첫날 계획했던 여행을 변경하고 분향소를 찾아오기도 했다. 분홍색 캐리어를 들고 분향소를 찾은 현모(31)씨는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연휴라 원래는 동남아 여행을 계획했는데 항공기 사고를 보고 티켓을 취소했다”며 “대신 짧게 국내 여행을 다녀오려고 떠나는 길에 들러서 조화를 놓고 왔다”고 눈물을 훔치며 답했다. 줄을 선 시민들의 눈에도 현씨처럼 눈물이 고였으며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방문한 한 부부는 온 가족이 다 함께 흐르는 눈물을 서로 말없이 닦아주기도 했다.
◇“내 성취보단 우리 사회가 무탈하길”
|
휴가를 나오자마자 군복을 갈아입기도 전에 분향소를 찾은 군인의 모습도 눈에 들었다. 추모 표찰을 달고서 군복을 입은 채 분향소에 조화를 놓던 한 해군 장병은 “휴가를 나오자 마자 이곳으로 향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섰다”며 “부대 내부에서도 분위기가 많이 침체돼 있는데 더 바랄 것도 없이 다들 무사히 건강하게 전역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남겼다.
12·3 계엄 사태부터 연말 대형 참사까지 암담한 12월을 보낸 시민들은 신년에는 개인의 대박보다는 사회의 ‘무탈’을 빌었다. 김채성(33)씨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들이 자꾸만 반복되니 언제든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올해 소망으로는 개인적인 바람은 크게 없는 것 같고 한국이 하루빨리 회복의 단계로 들어서 사회 안정이 되는 게 최우선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나흘째인 이날 희생자 179명에 대한 1차적인 신원 확인 절차는 모두 마무리됐다. 국토교통부 등 수습당국은 국과수의 DNA 감식 결과가 나오는대로 유가족들에게 시신을 인도할 예정이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희생자 179명 중 12명은 유가족에게 시신이 인도돼 장례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국토부는 이날 오후 2시 브리핑을 통해 “이날 중 희생자 가운데 40~50명에 대한 국과수의 DNA 감식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당 명단을 유가족들에게 일일히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