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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는 집보다 야외 그늘이 더 시원하기 때문이다. 창문이 작거나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방은 더운 열기가 방 안에 맴돈다고 이곳 주민들은 설명했다. 더운 바람만 내뿜는 선풍기는 전기요금만 잡아먹는 ‘계륵’ 같은 존재다.
쪽방촌 집집마다 모든 문이 열려 있었다. 바람이 잘 들게 하기 위해서다. 방문을 열어놓고 닫히지 않도록 돌을 괴어 놓거나 줄로 고정해놓은 곳도 있었다. 창신동 쪽방촌에서 30년 넘게 산 70대 A씨는 “문을 다 열어놨지만, 바람이 안 통해 안에 있으면 쪄 죽는다”면서 “밖으로 나와 바닥에 물 뿌리고 그늘에 앉아 있는 것이 더 시원하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새꿈어린이공원에는 쪽방촌 주민들이 그늘에 자리를 잡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다 걷은 채 앉아 있었다. 서울시가 거리 노숙인들과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마련한 천막과 대형 선풍기 앞은 ‘명당’이었다. 주민들은 의자를 하나씩 끌고 와서 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혔다.
‘명당’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이들은 공원 내 걸터 앉을 수 있는 곳을 찾아 한 자리씩 앉았다. 엉덩이와 닿는 면이 평평하면 평평할수록 경쟁률이 치열했다. 주민들은 부채질을 하거나, 마시고 남은 물을 목덜미에 뿌리기도 했다. 주민 백모(65)씨는 “집보다 밖이 더 시원하고 편해서 여기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며 “이번 여름은 유난히 견디기 어렵다”고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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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지자체가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지난 13일부터 ‘폭염 특별 보호 대책’을 가동해 무더위 쉼터를 마련했지만, 정작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백신 접종자들만 출입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려면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치거나, 일주일 내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고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60대 B씨는 “무더위 쉼터 가려면 음성 확인서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거동 불편한 노인들이 거기(선별진료소)까지 검사받으러 가겠냐”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로 무더위 쉼터에 이용 정원이 있는 것도 주민들이 쉼터에 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류모(70)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사람 모이지 말라고 하는데, 무더위 쉼터에 가보면 사람들이 이미 정원이 다 차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쪽방촌 상담소 관계자는 “일단 코로나19 때문에 방역수칙이 우선되는 터라 쉼터 오실 때 절차도 있고, 이용 인원도 제한된다”며 “쉼터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10~15명 정도만 수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백신 접종을 마쳤더라도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더위 쉼터에 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백씨는 “백신 2차 접종까지 다 맞아서 무더위 쉼터 갈 순 있으나, 백신을 맞아도 감염이 될 수 있다는 뉴스를 봤다”며 “혹시나 하며 마음 졸이는 것보다 그냥 마음 편히 안 가는 게 낫다”라고 털어놨다.
결국 코로나19 때문에 쪽방촌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기록적인 폭염을 온몸으로 견딜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에 서울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데 만전을 기하면서도 폭염에 취약한 계층을 돕는 활동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시는 자율방재단연합회를 꾸리고 무더위 쉼터와 공원 그늘막 등 다중이용시설의 방역을 강화하겠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