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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대국 제의를 받았을 때의 기분을 묻자 그는 “사실 잘 모르기도 했고, 당연히 제가 이길 거라고 봤다”면서 “‘구글에서 이런 AI도 만드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대국을 좀 쉽게 생각한 부분도 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근데 막상 보니 승부 호흡도 없고 고민하지 않고 바로 수를 두는 모습을 보니 벽에다 테니스 공을 치는 느낌이었다”며 “제가 너무 안일하게 준비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AI로 인해 바둑을 익히는 과정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바둑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세돌은 “제가 처음 바둑을 배웠을 때는 바둑이 두 명이 함께 수를 고민하고 두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고 배웠다”면서 “AI가 나온 이후로는 마치 답안지를 보고 정답을 맞추는 것 같아서 오히려 예술성이 퇴색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기보에 대해서는 한층 진화했다고 봤다. 이세돌은 “과거의 기보는 바둑의 역사를 학습하는 용도 외에는 특별한 가치가 없어졌다. AI가 더 완벽한 기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AI를 보고 배우는 편이 더 편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이건 프로의 입장에서 본 것으로, 아마추어 입장에서는 AI를 보고 배우는 기보의 내용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배우고 즐기는 입장에서는 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떤 수가 좋고 나쁜지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공공선을 위한 AI 개발이 AI의 핵심 원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리적인 시각을 반영해 AI 기술 개발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대로 준비가 안돼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속도 조절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기준이 없을 수는 없다. 제대로 준비해서 기술을 발전시켜야만 인간에게 유익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AI가 너무 필요하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하고 확실한 원칙을 가지고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세돌은 “가장 중요한 건 속도 조절”이라며 “기술이 너무 앞서 나가지 않도록 충분히 준비만 한다면 기술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장단점은 있겠지만 균형을 잘 맞춰나가면서 우리가 몰랐던 단점이 생기면 개선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AI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과 중국 같은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AI 기술을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인다면 못 따라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당장 AI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공포는 조금 과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AI 기술이 없는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 방향으로 발전이 없다면 인류는 굉장히 암울한 미래를 맞이할 것 같다”며 “AI 기술은 그 정도로 절대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