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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조홍제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애초 경영에는 큰 뜻이 없었다. 명문 경기고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이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 공과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으며 대학교수의 꿈을 꿨다. 하지만 부친의 부름으로 1966년 귀국해 효성물산에 입사하면서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공학도였던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은 남달랐다. “기업의 미래는 원천 기술 확보에 있다”는 경영 철학을 내세우며 연구개발(R&D)에 매진했다. 효성은 민간기업으로서 최초로 1971년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효성의 간판 제품인 스판덱스·타이어코드는 물론, 국내 첫 번째로 독자기술 개발에 성공한 ‘꿈의 신소재’ 탄소섬유, 세계 최초의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 폴리케톤의 상용화 역시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과 뚝심 경영의 결과물이다. 조 명예회장은 자동차 수요 급증을 예상해 타이어코드 기술을 개발했고 1979년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를 만들었다. 이후 미국과 유럽, 남미 등 해외 타이어코드 공장을 인수하고 중국과 베트남 등 글로벌 생산 기지를 확보하며 효성의 타이어코드를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로 키워냈다.
부가가치가 높아 ‘섬유 반도체’로 불리는 스판덱스 역시 조 명예회장이 독자 개발을 결정하고 연구개발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 당시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보유하고 있던 스판덱스 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했고 현재 효성의 스판덱스 브랜드 ‘크레오라’는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재계 맏형·민간 경제 외교관 역할…“한미 FTA 기여”
조석래 명예회장은 그룹 경영뿐만 아니라 2007~2011년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재계 맏형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도맡았다. 전경련 회장 재임 당시 “물고기가 연못에서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데 조약돌을 던지면 사라져버린다. 돈도 같은 성격이어서 상황이 불안하면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기업의 투자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등 산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미국과 일본 유학시절을 통한 유창한 어학 실력과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민간 경제 외교관으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조 명예회장은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중재계회의 등 30년 이상 다양한 국제경제교류단체를 이끌며 글로벌 경제 교류 확대에 큰 공헌을 했다. 특히 ‘한미 FTA’의 경우 2000년부터 조 명예회장이 한미재계회의를 통해 최초로 그 필요성을 공식 제기했고 체결 이후에도 미국의회를 방문해 인준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정부는 조 명예회장의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한·미 FTA 10주년을 맞아 공로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조현준·조현상 3세 경영 본격화…계열 분리 속도
조 명예회장이 타계하면서 효성그룹은 장남 조현준 회장과 삼남 조현상 부회장을 주축으로 한 계열 분리 작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효성그룹은 지난달 이사회를 통해 신설 지주회사 설립을 공식화했다. 효성티앤씨·효성중공업·효성화학·효성티엔에스 등으로 구성된 기존 지주회사 ㈜효성은 조 회장이, 효성첨단소재·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HIS)·효성토요타 등 6개사를 포함한 신설 지주는 조 부회장이 맡는다.
조 회장의 경우 섬유, 에너지, 석유화학 등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기존 주력 사업을 이끄는 반면, 조 부회장은 효성첨단소재를 중심으로 탄소섬유와 아라미드 등 미래 첨단소재 부문에 역량을 집중할 전망이다.
현재 조 회장과 조 부회장의 ㈜효성 지분율은 각각 21.94%, 21.42%로 비슷한 수준이다. 조 명예회장의 지분(10.14%)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시장에선 계열 분리 윤곽이 드러난 만큼 균등 배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