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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아이, AI와 차근차근 말 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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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기자I 2026.09.18 05: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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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진 두부브레인 대표 인터뷰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중 봉천동 취약가정 아이 만나
대기자 600명에 발달앱 개발…63명 평균 IQ 7.9점↑
AI 또래 ‘두부핑퐁’ 국내 이용자 3000명으로 성장
“고개 들면 보이는 달처럼”…누구나 닿는 치료 꿈꿔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강남에서는 아이의 성적을 올렸다면 봉천동에서는 아이의 말 한마디를 기다렸습니다.”

최예진 두부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부터 아이들을 가르쳤다.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날만큼 소위 ‘잘나가는’ 과외교사였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어느 순간 서울 봉천동의 탈북·취약가정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아이들과 놀아주고 밥을 챙기며 공부를 봐줬다. 처음에는 몇 명으로 시작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아이들이 몰렸다. 대학 4학년 시절에는 대기자만 600명에 달했다. 그는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주일에 만날 수 있는 아이는 얼마 안 됐다”며 “기다리는 아이가 600명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회상했다.

최예진 두부 대표가 두부핑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최예진 두부 대표가 두부핑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600명의 아이를 직접 가르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만나야 했다. 해답의 실마리는 우연히 신청한 대학 창업수업에서 나왔다. 최 대표는 공부방 아이들이 자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데 주목했다.

치료와 발달훈련을 게임처럼 만들어 집에서도 할 수 있게 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첫 인지발달 애플리케이션(앱) ‘두브레인’의 탄생배경이다. 서비스는 출시 직후 빠르게 이용자가 늘었다.

하지만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서버유지비용이라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무료 서비스였던 탓에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비용도 커졌다. 첫 달 약 100만원이던 서버비는 다음 달 200만원, 이후에는 500만원까지 뛰었다. 최 대표는 강남 과외로 번 돈을 서버비에 쏟아부었다. 이후 창업지원 사업을 통해 1억원을 확보하면서 사업을 본격화했다.

서비스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했다. 두부는 은백린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연구팀과 함께 발달이 느린 아이들이 집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병원이나 치료실에서 받던 인지훈련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프로그램 실증에 참여한 소아 63명을 대상으로 한 전후 평가에서는 평균 지능지수가 71.8점에서 79.7점으로 높아졌다.

봉천동 아이들과 만나기 시작한 지 약 10년, ‘두부’를 창업한 지도 9년 가량 흘렀다. 현재 두부의 주력 서비스는 인공지능(AI) 기반 인지훈련 프로그램 ‘두부핑퐁’이다. 두부핑퐁은 치료실에서는 선생님과 대화를 잘하지만 정작 학교에서 또래 친구를 만나면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데서 출발했다.

성인 치료사와 대화를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실제 또래관계에서 필요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충분히 경험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최 대표는 “또래들도 모두 아이들이다”며 “말이 느리고 대화가 잘 안 되면 재미없다고 그냥 가버린다”고 했다. 이어 “치료실에서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것과 실제 또래와 이야기하는 건 다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두부핑퐁에서 AI 또래와 다양한 상황을 반복해 연습한다. 친구에게 먼저 말 걸기, 놀이에 참여하기, 자기 생각 표현하기, 싫다는 의사 밝히기 등 실제 또래관계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약 200가지 상황이 마련돼 있다. 핵심은 단순히 말을 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실제 학교나 놀이터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갈 것인지, 상대의 반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 또래와 관계 맞는 방법을 미리 경험하며 사회성을 향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예진 두부 대표가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클리닉 '달나라 병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최예진 두부 대표가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클리닉 '달나라 병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두부핑퐁은 약 3년 전 처음 선보였고 외부 이용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본격화한 지는 약 2년이 됐다. 현재 국내 이용자는 약 3000명이다. 영어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해외 수요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에 거주하는 주재원이나 외교관 가정 가운데 한국어로 발달치료를 받기 어려운 아이들이 두부핑퐁을 찾고 있다. 앞서 출시한 인지발달 앱 두브레인(현 두부팡)은 영어와 캄보디아어, 한국어 등을 지원하며 누적 기준 세계 20여개국에서 70만명 이상이 이용했다.

서비스 이용자가 늘면서 부모들의 문의도 달라졌다. 바우처나 보험 등을 통해 비용을 지원받을 수 없느냐는 질문이 적지 않다. 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언어치료와 인지치료, 사회성 치료 등을 장기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비 부담이 크다. 최 대표는 두부의 서비스가 향후 기존 보험이나 바우처 등 지원체계와 연결된다면 치료 접근성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적거나 비용 부담 때문에 충분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가정에 디지털 방식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클리닉’이다. 언어와 사회성뿐 아니라 신체놀이 등으로 영역을 넓혀 지금까지 병원이나 치료기관을 찾아가야 받을 수 있었던 교육과 치료의 일부를 집에서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이 구상을 ‘달나라 병원’이라고 부른다”며 “달동네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달처럼 아이들이 어디서든 치료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10년 전 봉천동에서 600명의 아이가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시작된 고민은 이제 국경 밖으로 향하고 있다. 최 대표가 바라보는 곳은 치료사도, 전문기관도 충분하지 않은 지역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캄보디아나 인도처럼 가난하고 장애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곳에서도 휴대전화는 있다”며 “휴대전화나 태블릿만 있으면 필요한 교육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저희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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