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 5년차의 미국 경제가 기로에 섰다.
거의 대부분의 경제지표들이 동시에 아래쪽을 향하자 이제 월스트리트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 경제가 고점을 이미 통과, 둔화추세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경기 둔화의 속도와 강도. 시장 일각에서는 미국 경제가 당장 올 하반기부터 잠재성장률(3%) 수준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경제 둔화에도 불구하고 물가 오름세는 더욱 빨라졌다. 하반기 들어 물가 상승속도가 둔화되기는 하겠지만, 절대 수준은 내년까지 계속해서 높은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성장률 전망을 낮추는 한편, 물가 전망을 상향한 리먼브라더스의 존 신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의 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의 아들(Son of stagflation)` 즉, 완만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로 규정했다.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빨라지거나, 경기 둔화폭이 커지는 위험에 동시에 처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책 리스크도 크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어느쪽으로든 상황을 오판할 경우 경기둔화나 물가상승의 진폭이 훨씬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질 성장률 3% 무너질 듯..연준도 경기둔화 인정
지난 1분기중 5.6%에 달하며 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당장 이번 분기부터는 2%대로 떨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잠재능력을 최대한 활용,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여겨지는 3%선이 무너진다는 관측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경기둔화를 `예상`이 아닌 `현실`로 인정하고 있다.
연준이 29일 통화정책 방향 발표문을 통해 적시했듯이 △주택시장의 냉각과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금리인상 효과 및 △고유가 등 세 가지 요소가 경기를 누르는 상황이다.
월가에서는 하반기 들어 경기가 완만하게 반등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에, 3%선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특히 내년 들어서는 연간 성장률이 2%대로 완전히 내려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불경기로 간다는 뜻이다.
◇물가상승률, 내년까지 고공행진 지속
경제성장세의 둔화를 반영, 물가상승 속도가 더 빨라지지는 않겠지만, 눈에 띄게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월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거의 모든 이코노미스트들이 올 하반기는 물론이고 내년까지도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준의 인내범위 상단부인 2.0%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의 경우는 물가 오름폭이 하반기 이후 좀 더 빨라지면서 3%대로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휴 노동인력과 생산설비가 거의 소진된 가운데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올라 있기 때문에 비용측면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빠르게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경기후퇴 위기를 강조하고 있는 메릴린치의 경우는 올해말부터 물가 상승률이 1%대로 급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연준의 과잉긴축으로 인해 경제성장세와 물가오름세가 함께 낮아지는 `스태그내이션(stagnation)`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과잉긴축이 최대의 위험요소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올 하반기 이후 미국 경제에 미치는 가장 큰 하방 위험요소로 `과잉 긴축` 가능성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연준이 추가 긴축 가능성을 다소 낮춘 통화정책 방향 발표문을 내놓긴 했지만, 물가불안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리를 전혀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벤 버냉키 신임 의장 체제의 연준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발현을 막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내 상한선(2%)을 넘어서 있는 물가 오름세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나타내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신뢰를 잃게 된다는 것.
자가 거주자가 지는 가공의 집세 부담을 반영하기 위해 개발된 `OER(Owners` equivalent rent)` 항목이 현실과는 무관하게 근원 소비자물가 지수(CPI)를 부풀리고 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들의 지적이다.
실제 물가는 안정돼 있는데도 지표가 상승하는 이런 부조리를 연준도 알고 있지만, 수치가 야기하는 불안 또는 기대 심리를 경계하는 과정에서 결국 `과잉 긴축`의 유혹에 빠져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경착륙` 최대 불안요소는 주택시장과 건설경기
경기 경착륙 가능성을 우려하는 쪽에서는 주택과 건설시장을 가장 약한 고리로 꼽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미 주택 시장이 벼랑에 몰려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급반등에도 불구하고 건축허가의 절대 수준이 큰 폭으로 떨어져 있으며, 주택건설업체들의 체감 경기 지수는 11년만에 최저치로 추락해 있는 상태. 주택담보 대출 금리는 4년만에 최고치로 솟아 올라 있다.
주택 담보대출을 이용한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의 경제성장과 고용증가에 큰 기여를 해 온 건설 및 부동산 관련 서비스 산업의 침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는 "주택과 건설시장의 위축 추세가 수개월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더 이상의 금리인상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경기 떠받칠 긍정요인도 다수..경제체질 좋다
과거의 경기 둔화기와는 달리 경기를 떠받쳐주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다행스런 대목이다.
내년까지 3%의 안정적인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그동안 호경기 속에서도 새집 공급이 많지 않아 재고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고 △기업들도 제품 재고를 최소하하는 노력을 지속, 수요 둔화에 따른 생산조절 폭이 크지 않을 것이며 △기업들이 설비투자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옴으로써 투자 수요가 상당히 누적돼 있다는 점 등을 긍정요인으로 꼽았다.
경기가 큰 폭으로 냉각됐던 지난 1994∼1995년 및 2000년 당시와 달리 지금은 경기 연착륙의 질적 배경이 매우 좋다는 것이다.
△그동안 고용이 그리 빠르게 늘지 않았고, △생산성 향상으로 임금인상 압력은 미미한데다, △기업들이 현금을 잔뜩 쥐고 있어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면서 연준이 금리인상에 더 이상 적극적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많다.
리먼브라더스의 경우는 "설사 금리를 더 올린다 해도 `과잉`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지속적인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연방기금 금리 수준은 과거 긴축 사이클 당시에 비해 아직 낮다는 것. 지난 1994∼1995년 금리인상기에 3.5%, 1999∼2000년 당시에는 4.8%에 달했던 실질 연방기금 금리가 지금은 3.15% 수준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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