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의 주역’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비에트연방(소련) 대통령이 30일(이하 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소련의 정치적 민주화를 가져온 고르바초프는 마지막까지 국제 정세에 목소리를 냈으나, 공교롭게도 그가 눈을 감은 올해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서방은 러시아에 각종 제재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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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고인에 대한 평가 없이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짧은 성명을 발표하는 데 그쳤으나, 서방에선 고인을 향한 경의를 담은 반응을 보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냉전을 평화적으로 마무리 짓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용기와 성실함을 존경한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현 시점에서, 소련 개방을 위한 고인의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모범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그는 냉전을 종식시키고 철의 장막을 붕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그는 ‘자유 유럽’을 위한 길을 열어줬으며, 우리가 잊지 못할 그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자국과 서방의 극명한 온도차는 고인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서 비롯된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로, 1985년 54세 나이로 소련 최고 지도자인 공산당 서기장으로 집권했다. 7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집권 기간 동안 페레스트로이카(개혁)과 글라스노스트(개방) 양대 정책을 추진해 역사적 격변을 이끌어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한 고르바초프는 그해 12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몰타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한 냉전의 종식을 선언했다. 이 같은 공로로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국제 사회에서는 냉전 시대를 종식시킨 인물로 평가 받지만, 자국에선 한때 강대국이었던 소련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비난 받는다. 고르바초프는 1988년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대통령제를 도입해 1990년 소련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냉전 구도 해체로 소련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됐고 군부의 쿠데타 시도, 경제난 등을 겪으면서 1991년 12월 해체됐다. 고르바초프도 권좌에서 물러났다. 푸틴은 고르바초프에 의한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가장 끔찍한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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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인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고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던 1990년 9월 한국-소련 수교를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