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혈투 벌였는데’…끝나지 않은 고려아연 분쟁

김성진 기자I 2025.01.30 11:00:00

고려아연과 MBK·영풍, 치열했던 공개매수
막판까지 논란 불붙었던 집중투표제
‘의결권 제한·순환출자’ 법적분쟁 주목

[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지난해 추석 직전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공개매수로 촉발된 고려아연 경영권 갈등이 4개월을 넘겨 올해 설 연휴까지 이어졌지만 당분간 분쟁이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맞불 공개매수 혈전을 벌였던 양측은 최근 임시 주주총회의 적법성을 두고 다투며 소송전을 예고한 상태다.

◇맞불 공개매수로 치고받은 양측

이번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9월 12일 영풍이 MBK와 계약을 통해 의결권을 공동행사하기로 합의하며 시작됐다. 동시에 MBK·영풍은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를 설립하고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공시했다. 고려아연 주식 최소 7%(144만5036주)에서 최대 14.6%(302만4881주)까지 사들여 지분율을 최대 47.7%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23일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 주주들이 참석했다.(사진=고려아연.)
수세에 몰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사주 대항 공개매수 강수를 던졌다. MBK·영풍이 제시했던 공개매수가를 훌쩍 웃도는 주당 83만원을 제시하며 MBK·영풍의 공개매수를 저지한다는 계획이었다. MBK·영풍이 이에 대응해 고려아연과 똑같이 공개매수가격을 83만원으로 올리자, 고려아연은 89만원으로 한 차례 매수가를 인상하는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MBK·영풍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 절차를 중지해달라고 두 차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이 모두 이를 기각하며 고려아연의 공개매수는 절차대로 이뤄졌다. 그러나 MBK·영풍이 공개매수를 통해 5.34%의 지분을 취득해 총 지분율을 38.47%로 확대하는 데 성공하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고려아연은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시도했다. 지분율 경쟁에서 밀리자 유상증자를 통해 양측 지분율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그러나 시장과 금융당국이 대규모 유상증자에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자 고려아연은 결국 이를 철회했다. 이 과정에서 MBK·영풍이 추가로 지분을 장내매수하며 양측 지분율은 7~9%포인트(p)까지 벌어졌다.

◇막판 논란 불 지핀 집중투표제

양측 지분율이 벌어지자 최윤범 회장 측은 지난 23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집중투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고 원하는 후보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소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경영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조치로 꼽히지만, MBK·영풍의 이사회 진입을 막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됐다. 최 회장 측은 특별관계인 53명을 보유하고 있어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표 대결에서 MBK·영풍 측보다 더 유리할 것으로 관측됐다.

고려아연은 이번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이를 전제로 이사 선임을 시도했지만, 정관 변경과 동시에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결국 MBK·영풍이 신청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며 가로막혔다. 이 집중투표제는 뒤지는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의 가족회사인 유미개발이 제안했다.

◇‘의결권 제한·순환출자’ 법적분쟁 주목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고려아연은 임시주총 직전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의결권 행사 무력화를 시도했다.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최씨 일가 및 영풍정밀이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일부를 취득하면서다.

상법 제369조 제3항에 따르면 ‘A(고려아연)와 A의 자회사가 B(영풍) 회사의 발행주식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질 경우, B 회사는 A 회사에 대한 주식 의결권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를 활용해 영풍이 기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의결권을 무력화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3일 고려아연은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25%의 의결권을 제한한 상태로 주총 안건을 처리해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 총 19명의 인원 중 18명이 고려아연 측 추천 인사로 채워졌다.

양측은 법적 공방을 예고한 상태다. MBK는 SMC의 이번 지분 취득으로 ‘고려아연(100%)→선메탈홀딩스(100%)→ SMC(10.33%)→ 영풍(25.42%)→ 고려아연‘의 신규 순환출자 구조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MBK·영풍은 “공정거래법 제22조는 순환출자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제36조는 이를 위반할 우려에 대해서까지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한국 정부는 재벌의 추가적인 순환출자를 막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며 “(이를 놔둔다면)대기업이 해외 자회사 몰래 만들고 편법으로 순환출자하는 계기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은 “이사회를 MBK에 전향적으로 개방할 수 있다”며 화해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MBK가 소모적인 전쟁을 계속한다면 고려아연 전 임직원과 기술진 그리고 노조는 절대 그 전쟁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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