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팔 정부가 언급하고 있는 기금은 2022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발족한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Fund for Responding to Loss and Damage)이다.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선진국이 아닌,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이 피해를 떠안는 구조를 바꾸겠단 취지다.
아직 네팔 대홍수에 기후변화가 명확히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히말라야 산맥은 영구동토층과 빙하가 녹아 암석과 토양이 불안정한 상황이고, 최근 수십년간 빙하호 붕괴 홍수 등의 연관 재해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점은 연구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기금 이사회 이사들도 지난 2일 공개서한을 통해 “(네팔의 재난은) 기금이 대응하기 위한 전형적인 기후 관련 현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2024년 정식 출범한 해당 신설 기금은 지난 6월 1차 지원 신청 접수를 마감했고, 오는 12월 전까지는 회의가 예정돼 있지 않다. 네팔 재난 지원을 위한 임시 회의가 열린다 하더라도 현재 필요한 자금은 기금이 보유한 재원을 훨씬 웃돈다는 게 블룸버그의 지적이다.
기금과 세계은행(WB) 자료에 따르면 27개국 및 파트너로부터 약속받은 공약액은 8억 2200만 달러 이상이지만, 실제 납입된 기부금은 약 4억 8500만 달러에 불과하다. 현재 해당 기금은 세계은행이 위탁 관리하고 있다. 네팔 사태 이전에도 이미 여러 국가가 총 28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176건의 자금 지원을 신청했지만, 현재까지 실제 집행된 자금은 없다.
앞서 지난해 허리케인 ‘멜리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자메이카가 2000만 달러를 요청했고, 네팔도 이번 재난 이전 에너지 사업, 보건시스템, 식량 안보 등을 목표로 한 3개 프로젝트에 4300만 달러 지원을 신청한 바 있다. 기금 신청은 개도국 정부나 기관만 가능하고 이사회가 심사하는 구조다.
현재 기금의 이사회는 오는 12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릴 예정인만큼 첫 지원금 집행까지는 최소 수개월 이상 걸릴 전망이다. 속도전이 중요한 네팔 대홍수 지원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에 독일 비영리단체 하인리히 뵐 재단의 리안 샤라텍 부국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긴급 구호 형태의 ‘신속 방출 지원’이 기금의 핵심 역할 중 하나가 돼야 한다”며 “네팔의 피해 상황은 명백한 ‘손실과 피해’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최빈국(LDCs) 기후변화협상 의장단 수석 자문역인 만지트 다칼도 “12월까지 기다린다면 너무 늦다”며 “이번 사태는 취약국이 괴멸적인 손실에 직면했을 때 손실과 피해 기금이 존재 의의를 증명할 실질적인 시험대”라고 평가했다.
속도도 문제이지만, 기금 재원도 넉넉치 않다는 것도 우려점이다. 앞서 기금 측은 지난 4월 “내년 말까지 자원이 고갈될 위험이 있으며, 이는 운영 동력을 상실하고 평판에 타격을 입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각 국가들은 4년마다 기금에 공약액을 충원해야 한다. 내년부터 새로운 충원 라운드가 시작될 예정이지만, 지원금 집행이 지연되면 과정 자체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그럼에도 대안은 마땅치 않다. 미국이 글로벌 구호 및 기후 행동 임무에서 발을 빼면서 이용 가능한 자원의 폭이 한층 좁아졌기 때문이다.
개도국들은 기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유엔이 지원하는 또 다른 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을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GCF 역시 영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공약액을 대폭 축소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건 비용 충당을 위해 추가적인 대출을 받는 부분도 검토할 수 있지만, 다수 개도국들은 재무적 위험성이 큰 상황이다. 네팔만 하더라도 국가 부채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48%에 달한다.
세계자원연구소(WRI) 인도 지부의 울카 켈카 기후·경제·금융 집행이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기후 재원 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며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이미 발표된 공약부터 실제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빈번해지는 기후재난과 이에 따른 피해가 대부분 개도국들로 향하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자, 선진국들도 책임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5년 파리협정이다. 기후 관련 피해 대응을 위한 국제 약속이지만, 기후 재난 때마다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유엔 기후 정상회의때마다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도국과 기후 관련 단체들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한 부유한 선진국들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역대 최대 배출국인 미국은 지원을 축소했고, 세계 최대 배출국인 중국은 자국이 여전히 개도국에 해당하는만큼 선진국과 동일한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언급하는 상황이다.
오는 11월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에서는 개도국의 기후 재원 접근성 개선이 핵심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네팔 대홍수 관련 문제가 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한 기후위기 비용 등에 대한 압박이 게서질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