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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찾은 관세청 인천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는 밀반입되는 마약류를 찾아내기 위한 업무에 한창이었다.
현삼공 관세청 국제조사과 행정사무관은 “마약은 정보 싸움”이라며 “관세청이 보유한 자체 정보분석툴을 활용해 범죄 우려가 있는지 파악하고 외부정보에 의한 검사, 탐지견 검사 등을 통한 단서에 기반해 은닉한 마약을 잡아낸다”고 밝혔다.
◇국내 반입 물품 전량 엑스레이 검사
특송물류센터에는 다양한 크기의 상자가 줄지어 있다. 엄청난 물량이지만 질서정연하다. 언뜻 봐서는 택배 현장 같다. 대부분의 화물이 반출장으로 옮겨지지만, 이 중 일부 화물은 ‘선택’을 받아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옮겨진다. 이는 바로 반입 금지 물품인 마약류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화물이다. 통상 인천세관에 들어오는 물품의 95%는 엑스레이를 통과한 후 국내 배송을 준비하고, 5%는 세관검사장으로 이동한다.
마약이나 총기는 불법이기 때문에 신고되지 않고 밀반입된다. 주성렬 인천본부세관 특송통관1과장은 “외국 물품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물품명·중량·수취인 등에 대한 정보가 미리 들어온다”며 “직원들이 정보를 분석한 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검사지정을 하면 그 화물이 한국에 들어온 후 선별검사시스템인 CS(Cargo Selectivity)검사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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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망을 촘촘히 하기 위해 무작위(랜덤) 조사를 하거나, 특송업체의 검사지정을 받기도 한다. 주 과장은 “미국이나 유럽 등은 우리 주권 밖이라서 현지 로컬 에이전지 사정까지는 알 수 없다”며 “특송업체가 새로 거래한 곳의 경우 신뢰도 파악을 위해 검사해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공항으로 들어오는 화물의 절반은 특송물류센터에서 인천세관이 직접 통제를 하고, 나머지는 DHL·페덱스 등 자체 시설을 갖춘 업체가 7곳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한다. DHL 등에 검사를 모두 맡기는 것은 아니다. 인천세관 직원들이 매일 검사 지정해서 현품 검사를 하고, 그중에서 위험도가 높은 마약류와 총기류는 특송물류센터로 가지고 와서 재검사한다.
◇오감에 전문기기까지 동원…숨어있는 마약 찾기
마약이 밀반입된 것으로 의심되면 그때부터는 마약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검사를 시작한다. 상자 안에 물건이 섞여 있으면 판별이 어렵기 때문에 물건을 일일이 해체해서 엑스레이에 넣는다. 신영진 특송통관1과 관세행정관은 “엑스레이가 복잡해 보이지만 마약은 성분별로 유기물인지 무기물인지에 따라 색깔이 달라서 판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특송과 직원들은 약통을 흔들어서 소리를 들어보고 내용물의 냄새를 맡기도 했다. 마약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을 검사할 때 소리·촉각·냄새·시각 등 오감을 총동원한다. 사람의 능력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이온 스캐너의 도움을 받는다. 길쭉한 봉으로 마약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을 쓱쓱 닦아낸 후 기계에 넣으면 판별해준다. 이온 스캐너는 1억분의 1g이라도 마약이나 폭발물 분자가 있으면 찾아낼 정도로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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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 있다고 판단되면 상자를 개봉한다. 세관 당국은 검사 권한이 있어서 박스를 뜯을 수 있다. 마약이 확인되지 않으면 상자를 다시 밀봉해서 수신자에게 보낸다. 마약 검사를 위해 물건을 파손했는데 마약이 검출되지 않았다면 손실보상제를 통해 세관에 신고된 금액만큼 보상한다. 신 행정관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거나 특별한 물건이라고 여겨지면 당사자에게 전화해서 사과하고 세관의 역할 등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한다”며 “우리나라 국민성이 높아서 화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해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마약범 특정 어려워…수법도 가지가지
이렇게 특송화물 속에 교묘하게 숨겨졌던 마약을 찾아내면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인 인천본부세관 마약조사과가 수사에 나선다. 마약조사과는 특송통관과로부터 관련 정보를 넘겨 받는다. 그렇다고 곧바로 체포하지 않는다. 밀수 물품을 중간에서 적발하지 않고 감시 통제 속에서 유통되도록 한 후 최종 유통 단계에서 적발하는 ‘통제배달’로 마약범을 검거한다. 마약 조사에서는 실제 마약을 주문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특정하는 것이 중요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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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조사과 직원들이 직접 물건을 배송하고 수취인이 나타날 때 검거한다. 하지만 마약을 주문한 사람이 직접 물건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하거나 수취인이 부재중인 경우가 많다. 받는 사람을 가명으로 쓰거나 주소를 폐가나 남의 집으로 해놓는 일도 부지기수다. 고민수 마약조사과 주무관은 “최근에는 추적이 어려운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등 수법이 고도화하고 있지만 그만큼 수사 기법도 발전한다”며 “사명감을 가지고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말했다.
마약범을 적발한 후에 압수한 마약은 전량 폐기한다. 마약조사과 관계자는 “종이에 마약을 얇게 코팅해서 뜯어서 녹여 먹는 방식, 사탕 봉지 안에 마약을 넣는 방식 등 다양한 수법이 동원된다”며 “중국 진통제인 거통편은 중국 약국에서 판매해서 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마약류로 분류돼 압수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 마약 수사권 강화…인력보강은 과제
관세청은 지난해 1054건, 1272kg으로 역대 최대량의 마약을 적발했다. 1054건 중 93%는 세관검사와 탐지견, 엑스레이 등을 통해 세관의 자체 역량으로 적발에 성공했다. 코로나19로 해외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항공여행자 밀수는 건수와 적발량이 각각 73%, 77% 감소했다. 그러자 다른 루트를 통한 밀수가 늘었다. 화물을 통한 마약 밀수건수는 1년 사이 159% 증가했고 적발량은 1288%나 껑충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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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1일부터 관세청의 마약 수사 범위가 확대한 것도 마약 적발이 확대한 요인 중 하나다.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면서 500만원 미만의 마약 밀수사건은 관세청이 직접 수사할 수 있게 됐다. 작년에 적발된 자가소비 목적의 100g 이하 마약 밀수는 385건으로 1년 새 179%나 늘었다. 소량 밀수가 늘면서 관세청 역할도 커진 상황이다.
인력 보강은 장기 과제다. 지난해 업무 범위가 확대됐지만 인원은 보충되지 않았다. 지난달 마약조사2과를 신설해 12명이 충원되며 인력이 60여명으로 늘었지만 경찰의 마약 수사 인력이 1100여명, 검찰 280여명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마약조사과 한 관계자는 “경찰은 국내에서 투약하는 사람만 대상으로 조사하지만 관세청은 반입되는 물량을 모두 적발하다 보니 양이 많다”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최소 50명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서 관계부처와 협의해서 차츰 증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