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 생활을 한 끝에 이날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원주로 이사하면서 소년기를 보냈다. 1959년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미학과에서 수학했다. 문인 활동은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저녁 이야기’라는 시를 발표하며 시작했다. 이후 1969년 11월 ‘시인’지에 ‘황톳길’ ‘비’ ‘녹두꽃’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공식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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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70년 정부를 비판하는 저항시 ‘오적’을 발표하며 반공법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당시 한국사회에 만연했던 부정부패를 풍자한 시였다. 이로 인해 그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됐고 사상계는 폐간됐다. 이른바 오적필화 사건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돼 긴급조치 4호 위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국제적인 구명운동으로 10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민청학련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써 유신이 끝날 때까지 6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생명 운동에 주력했다. 1991년 명지대 강경대 군이 전경의 폭력에 맞아 사망한 뒤 청년들의 분신과 투신이 이어지자 조선일보에 실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으로 민주화운동 진영과 갈라서게 됐다. 2012년 대선에서는 유신시대 자신과 대립했던 故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해 ‘변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법원은 2015년 김 시인이 민청학련과 오적필화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15억원의 국가배상판결을 했다.
고인의 대표 저서로는 ‘타는 목마름으로’ ‘생명’ ‘애린’ ‘황토’ ‘대설(大說)’ 등이 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각종 문학상도 휩쓸었다. 1975년에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을 받았고, 1981년에는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수상했다. 2002년 제14회 정지용문학상, 제10회 대산문학상, 제17회 만해문학상, 2006년 제10회 만해대상, 2011년 제2회 민세상 등을 받았다. 노벨문학상·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93년 서강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2006년 제주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명지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국대학교, 원광대학교에서 석좌교수,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고인은 장편소설 ‘토지’를 쓴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과 1973년 결혼했다. 김 이사장은 2019년 별세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작가)씨와 차남 세희(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화관 관장)씨가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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