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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적 소비 성향, 탄탄한 리셀 수요…'에루샤', 한국서 실적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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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진 기자I 2026.04.16 05:50:03

샤넬, 글로벌 실적 하락세지만
한국선 9%↑매출 첫 2조원 고지
국내 가격 5차례 올리며 ''수익 방어''
재테크로 인식…리셀 시장 활성화
고가 예물 수요 늘어난 영향도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글로벌 명품 시장이 흔들리는 사이 한국만 반대로 달렸다. 가격을 올릴수록 잘 팔렸고, 본사가 침체에 빠진 사이에도 한국 법인은 역대 최대 실적을 썼다. 초고가 3대 명품브랜드인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이른바 ‘에루샤’ 얘기다. 리셀(재판매), 혼인율 반등까지 맞물리며 한국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실적 방어막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고객들이 개점 시간을 앞두고 입장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5일 각 사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에르메스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 1251억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1조원 벽을 돌파했다. 전년(9600억원대) 대비 16.7% 증가했다. 영업익은 3055억원으로 14.5% 늘었다. 루이비통코리아의 매출은 1조 8543억원으로 전년 대비 6.1% 늘어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영업익은 5256억원으로 35.1% 뛰었다. 샤넬코리아도 매출 2조 130억원으로 전년대비 9% 늘며 처음으로 2조원 고지를 밟았고, 영업익은 3360억원으로 25% 증가했다.

글로벌 흐름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에르메스는 지난해 매출 160억유로에 영업이익 66억유로로 각각 8.9%, 7% 성장하며 선방했지만, 루이비통을 거느린 LVMH는 매출이 808억유로로 5% 감소했고 순이익도 13% 줄어든 109억유로로 내려앉았다. 샤넬은 아직 지난해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직전 연도인 2024년 기준 매출이 4.3%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30% 줄었다. 한국 법인이 역대급 실적을 쏘아 올리는 사이 글로벌 본사는 저성장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한국 호실적의 배경은 반복된 가격 인상이 꼽힌다. 에르메스는 지난해 두 차례, 루이비통은 세 차례, 샤넬은 무려 다섯 차례 국내 가격을 올렸다. 가격 인상의 표면적 명분은 고환율·원가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선을 넘나들었고, 금 가격 상승과 장인 인건비 증가도 부담 요인으로 꼽는다. 다만 이를 두고 업계에선 반복 인상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상은 글로벌 수요 둔화 속에서 한국 등 성장 시장에서의 가격 인상으로 수익성을 방어하려는 전략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동 전쟁으로 두바이 등 중동 주요 명품 쇼핑 허브 방문객이 급감 중이다. 특히 최대 시장인 중국마저 내수침체에 수요가 하락세다. 명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본사와 각국 지사가 모여 세일즈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한국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며 “발표 순서도 과거엔 후순위였지만 이젠 2~3번째로 올라왔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한국은 전 세계에서 명품 소비에 최적화된 시장이다.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베블런 효과’가 강하게 작동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향과 인구 밀집 환경이 맞물려 소비가 쉽게 노출되고 비교된다. 최근 혼인율 반등은 기름을 붓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4만건으로 2018년 이후 최대를 기록하며 반지·시계 등 고가 예물 수요를 끌어올렸다. 이런 조건이 맞물리며 가격 인상에도 수요가 꺾이지 않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명품 시장에서도 브랜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최상위 브랜드로 수요가 집중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가격 인상을 통한 희소성 전략이 작동하면서 구매가 고가 브랜드로 쏠리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 부담 속에서 여러 제품 대신 상징성이 있는 명품 제품 하나에 집중하는 소비 경향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풀이했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리셀 시장이 수요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으로 작동 중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이커머스가 가장 활발한 시장 중 하나다. 크림·솔드아웃 등 플랫폼을 중심으로 리셀 거래가 활발하다. 이른바 ‘롤테크(롤렉스+재테크)’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시계와 가방을 되팔아 차익을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 됐다. 실제 사용 여부와도 무관하게 가격 상승을 전제로 구매가 이뤄지면서 명품을 소비가 아닌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는 흐름도 자리를 잡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가격 인상에도 수요가 유지되는 구조가 형성된 시장”이라며 “글로벌 수요가 둔화된 상황에서 브랜드들은 일정 부분 수요를 지탱하는 시장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리셀과 선물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실제 소비를 넘어선 수요층이 존재한다는 점도 특징”이라며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최상위 명품 수요는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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