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에 작별 고한 김민기, 마지막 길 울려퍼진 '아침이슬'

장병호 기자I 2024.07.24 09:50:54

김민기 학전 대표 발인식 24일 오전 거행
학전 출신 설경구·장현성·방은진 등 참석
추모객, 고인 대표곡 함께 부르며 애도
시대에 저항하며 '뒷것' 자처했던 예술인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너무나도 슬픈 ‘아침이슬’이었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옛 소극장 학전(현 아르코꿈밭극장) 앞마당. 지난 21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민기 학전 대표의 발인식이 이날 이곳에서 거행됐다.

30여년간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 배출에 힘썼던 가수 고(故) 김민기의 발인식이 엄수된 24일 서울 종로구 ‘학전’이 폐관된 후 새롭게 연 극장인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유가족들이 고인의 영정을 들고 운구 차량을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른 아침에도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학전 출신 배우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방은진, 오지혜, 최덕문, 배성우와 가수 박학기, 이적,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이 참석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학전을 거쳐 간 공연계 관계자들까지 200여 명이 함께 했다.

고인의 유해를 모신 운구차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해 이날 오전 8시 정각 학전 앞에 도착했다. 유가족들이 고인의 영정을 들고 학전 앞마당에서 묵념의 시간을 갖자,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슬퍼하듯 하늘에서 한 방울씩 비가 떨어졌다. 이어 유가족들은 고인이 33년간 이끌어온 학전 소극장 안을 고인의 영정을 들고 둘러봤다. 아주 잠깐 하늘에서 햇빛이 비쳤다. 더 슬퍼하지 말하는 고인의 뜻 같았다.

오전 8시 10분, 영정을 든 유가족이 극장 밖을 나오자 발인식에 참석한 이들이 고인의 대표곡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추모객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하늘에선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가족들이 운구차와 함께 학전을 떠난 뒤에도 추모객들은 자리를 좀처럼 떠나지 못했다. 빗방울도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학전 앞 골목길 앞에서 색소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인의 노래 ‘아름다운 사람’ 연주였다. 색소폰 연주에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던 추모객은 연주가 끝나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색소폰을 연주한 이는 학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밴드로 활동한 이인권 씨였다. 이 씨는 “학전에서 결혼도 했고, 선생님께서 주례도 서주셨다”며 “제게 아버지 같은, 아름다운 분이라 생각해 이 노래를 불러 드렸다”고 말했다.

발인식은 이날 오전 8시 20분 끝이 났다. 발인식 내내 눈물을 멈추지 않았던 장현성은 “선생님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하셨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을 보내드리겠다”며 “마지막까지 감사하다”며 참석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30여년간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 배출에 힘썼던 가수 고(故) 김민기의 발인식이 엄수된 24일 서울 종로구 ‘학전’이 폐관된 후 새롭게 연 극장인 아르코꿈밭극장에서 배우 설경구, 장현성이 고인을 추모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신의 생각을 담은 노래로 부조리한 시대에 저항했던 가수이자, 공연 연출가로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상징 학전을 이끌었던 김민기 학전 대표는 이날 영면에 들었다.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통원 치료를 받으며 위암 투병을 해온 고인은 병세가 악화해 지난 21일 밤 8시 26분 위암 합병증인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천안공원묘원에 봉안된다.

고인은 최근 방영한 TV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자신보다 늘 남들을 먼저 생각하며 ‘뒷것’을 자처했다. 대표곡 ‘상록수’처럼 늘 한결같은 예술인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3~4개월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미안하다”고 한 것이 고인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말이 됐다.

70년대 가수로 활동했던 고인은 1971년 ‘아침이슬’, ‘꽃 피우는 아이’, ‘늙은 군인의 노래’ 등을 수록한 1집 음반을 발매했다. 그러나 ‘10월 유신’과 함께 앨범 수록곡 대다수가 금지곡이 되고 음반 또한 전량 압수되면서 데뷔 음반이 마지막 정식 음반이 됐다.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음악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1991년 대학로 소극장 학전 개관 이후 음악 활동보다 공연 제작 및 연출에 매진했다. 학전(學田)은 ‘배움의 밭’이라는 이름답게 가수 고(故) 김광석과 배우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등을 배출하며 한국 문화예술계의 ‘못자리’가 됐다. 한국 창작뮤지컬 대표작인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 어린이 공연도 다수 제작했다.

학전은 재정 악화와 고인의 건강 문제로 개관 33주년인 지난 3월 15일 문을 닫았다. 어린이와 청소년 관객, 그리고 신진 음악인을 위한 공연장으로 써달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지난 17일 다시 문을 열었다.

김민기 학전 대표. (사진=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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