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직장인 A씨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자해 시도까지 했다. ‘네가 만든 게 뭐냐’는 질문에 스스로 ‘쓰레기’라고 대답하게 만드는 상사의 폭언 탓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지라 얼어붙은 취업시장에도 A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더 있다가는 제가 죽을 것 같아서요.” 두 달동안 병원을 오가며 정신진료를 받고 있는 그는 다시 직장생활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2020년 6월. 한 달 뒤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주년(7월 16일)이 돼 간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여전히 쌍팔년도 시절 상사가 건재하다”고. 전문가들은 폭언 신고가 들어온 회사에 대해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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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4일 ‘2020년 4월~6월 폭언 모욕 사례’를 공개했다. 이들이 공개한 제보를 종합하면 직장 내 폭언은 크게 △옛날 같으면 △내 자식 같으면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옛날 같으면’ 유형이다. 제보에 따르면 추가 근무를 강요하며 “옛날 같으면 벌써 (회사에서) 날아간다”고 부하직원에게 폭언을 하는 사례가 여전하다. 직장에서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아프다고 일을 안 할 수 있냐’면서 새벽 야근과 주말 출근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는 상사들이 야근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한 직장인은 “야근을 하지 않으면 일을 안 하는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한다”며 “상사는 정시에 퇴근하는 것도 일찍 간다고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공짜 야근을 강요당한다며 수당을 받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 “내 새끼 같으면 벌써~”
다음으로 ‘내 자식 같으면’ 유형이다. 부하직원이 생물학적으로 타인의 자녀이기 때문에 때리지는 못하고 말로 타이르는 것이라며 때리는 것 못지않은 언어폭력을 가하는 식이다. 단체가 공개한 언어폭력 사례로는 “사회물정 모르느냐. 너 혼자 잘나서 잘한 것 같냐. 내 새끼 같으면 XX게 패 죽여 버렸다. 남의 새끼라 건들질 못하고 말로 훈계하는 거다” 등이 있다.
사회생활을 잘 못 한다며 ‘내 자식 같았으면’을 들먹이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직장인은 “‘너는 아직 수준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며 ‘내 자식 같았으면 책상이나 의자를 던져 버리거나 패 죽여 버린다’고 했습니다. 눈을 쳐다보면 눈을 내리 깔라고 했습니다”고 토로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의 근로자 폭행은 최대 징역형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가하는 행위는 금지되며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남의 자식이라 차마 때리지는 못한다’며 상사가 폭언을 하더라도 남들이 보는 앞이 아닌, 당사자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이뤄진 행위에 대해선 처벌하기가 어렵다. 공연성이 인정될 때만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직장갑질 신고하면 근로감독관 보내야”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에서의 폭언이 여전하다며 근로감독 강화를 제안한다.
실제 지난 4월 27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현황에 따르면 폭언이 1638건으로 전체 사례의 절반가량(48.9%)에 해당한다. 특히 폭언은 50인 미만 사업장(57.5%)에서 심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119는 보다 실효성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위해 10인 이상 사업장에는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규정 담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체는 “폭언이 녹음된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사업장에 근로감독이 이뤄져야 함부로 욕하고 모욕주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단체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오면 회사 차원에서 지체 없는 조사와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등 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조항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