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룸버그는 이날 사우디 관료를 인용, 반(反)부패위원회가 억류된 인사들에게 석방을 대가로 불법 축적 재산의 회수에 대해 논의를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불법 자금에 대해선 헌납이 아닌 몰수 대상으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사우디 정부는 이들이 지난 수십년 간 부패·횡령 등으로 적어도 1000억달러를 챙겼다고 보고, 최소 500억달러(약 55조원)에서 최대 1000억달러(약 110조원)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우디 정부는 또 체포·구금 인사들에게 석방을 대가로 재산 헌납도 제안했다. 앞서 지난 16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 정부가 체포된 인사들에게 재산의 70% 헌납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7일 사우디 정부가 8000억달러(약 891조원) 국가 귀속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중앙은행은 이들 인사들과 관련 있는 개인·기업 계좌 1200여개를 이미 동결시킨 상태다.
이는 사우디 정부의 재정 압박이 커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우디는 그동안 장기간 유가 하락 등으로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 왔고, 2014년 7300억달러(약 814조원)에 달하던 외환보유액은 올해 8월 현재 4876억달러(약 544조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자유의 대가로 돈을 내라고 요구하는 사우디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일각에선 당장의 재정 위험을 해결할 수 있겠지만, 반대 세력의 결속을 더욱 강화시키고 부패 인사들의 처벌을 원하는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재산 몰수가 법정 다툼을 피하는 대신 부패 척결을 뒤로 미루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왕국’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석유 의존도를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비전 2030’ 개혁을 공고히 하는데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내주 살만 국왕이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왕위를 이양할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전망에 힘을 보탠다.
유라시아그룹의 위기관리 책임자인 아이함 카멜 애널리스트는 “이번 반부패 인사 축출 작업은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더 많은 권력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그의 비전 2030 개혁 실행에 대한 영향력 행사 폭도 넓혀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체포 당한 대부분이 엘리트 인사들이어서 이들을 기소하게되면 더욱 불안정한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면서 “재산 압류 및 벌금 부과 방식은 국가 재정을 향상시키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RBC 캐피탈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애널리스트는 모하메드 왕세자가 부패 인사들로부터 거둬들인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방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날수록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그는 또 추진 중인 개혁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지지 기반인 청년층에게 확신시켜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이번 숙청이 외국인 투자나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기업공개(IPO)에는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독일 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3)에서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과 연락하고 있는데 모두가 이번 사태를 제한적인 국내 문제로 이해한다”며 “사우디 정부는 벌써 했어야 할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