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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누가 묻혔는지를 놓고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100년 만에 발굴조사가 진행된다.
23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오는 8월부터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가 쌍릉 중 대왕묘를 발굴한다. 이번 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치(谷井齊一)가 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쌍릉을 발굴한 뒤 정확히 한 세기 만이다. 익산시가 발주한 사업으로 내년 2월까지 약 7개월에 걸쳐 계속될 예정이다.
익산 쌍릉은 이번에 발굴되는 북쪽의 대왕묘와 남쪽의 소왕묘로 구성돼 있다. 대왕묘는 지름 30m, 높이 5m 규모이고, 소왕묘는 이보다 조금 작은 지름 24m, 높이 3.5m다. 두 무덤 모두 원형 봉토분으로, 내부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같은 백제 후기의 횡혈식 석실묘(굴식돌방무덤)다.
쌍릉의 대왕묘는 백제 무왕, 소왕묘는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국립전주박물관이 작년 1월 일제강점기 쌍릉 조사에서 나온 유물을 정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통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대왕묘 목관 내부에서 추가로 찾아낸 치아 4점에 대해 “전반적으로 닳은 정도가 비슷하고 중복된 부위가 없어 한 사람의 치아일 가능성이 크다”며 어금니와 송곳니는 20∼40세 여성의 치아라고 밝혔다. 또 대왕묘에서 발견된 그릇의 형태는 백제 토기가 아니라 7세기 전반의 신라 토기와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학계 일각에선 대왕묘의 피장자는 여성이므로 무왕의 무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백제 무덤에서 이례적으로 신라 토기가 출토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대왕묘의 주인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이수정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작년에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왕묘가 무왕의 무덤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학자는 거의 없었다”면서 “쌍릉 피장자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발굴조사를 결정했다. 유물을 최대한 수습하는 한편 무덤이 어떻게 축조됐는지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