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 앞에 붙는 수식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상황 속 첫 대선이자 절체절명의 위기 끝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역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한 시대정신을 드러내기보다 갈등과 혐오, 분열의 양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상대 진영을 향한 끊이지 않는 네거티브 공세는 물론 고소·고발, 폭력과 협박으로 얼룩진 유세현장, 부정선거 의심을 불러일으킨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전문가들은 대선 이후엔 여러 갈래로 찢어진 갈등을 봉합할 치유의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
‘위너 테이크 올(winner take all)’, 선거판은 승자 독식 구조가 확실한 곳이다. 지면 모든 것을 빼앗기는 탓에 그동안 선거 운동 과정에서 상대 측을 향해 기면 기고 아니면 말고 식의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고,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거티브 공방이 심각했고, ‘패자는 감옥간다’는 식의 ‘정치 보복’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대립 분위기가 극한으로 치달았다.
대화와 정책공약이나 미래비전이 실종된 사이 갈등은 고소·고발 전(戰) 난무로 이어졌다. 형사소송법상 수사기관에 고발장 접수 즉시 피고발인은 피의자으로 분류돼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 이에 상대 후보를 흠집 내기에 안달 난 여야 정당뿐 아니라 고발전문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허위 해명 혐의, 김혜경씨의 공무원 사적 동원 의혹과 거짓 해명 혐의 등 후보 가족과 관련한 고발장도 잇따르면서 장외전을 이어갔다.
정치로 해결해야 할 영역까지 사법의 손을 빌리는 행태는 수사기관의 수사력과 행정비용 낭비로 이어졌다. 실제 고발은 고발장을 접수받아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구조라 정작 수사가 필요한 민생 분야 등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유세현장은 ‘테러’로 얼룩졌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신촌에서 선거운동을 하다 70대 좌파 유튜버 표모(70)씨로부터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살해 협박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온라인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윤석열 죽이려고 화염병 만들었다’는 글에 대해 소재파악 등 피의자를 특정하기 위한 수사에 착수했다.
|
선거 기간 후보자의 벽보·현수막 훼손 사건, 금품 수수, 허위 사실 유포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의 선거사범도 끊이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 7일 기준 대선 관련 불법행위 880건(1048명)이 신고돼 3명을 구속, 50명을 송치했다.
남녀를 극단으로 갈라치는 정치로 젠더갈등도 첨예화됐다. 이번 대선에서 ‘이대남’, ‘이대녀’가 ‘캐스팅보트’로 떠오르면서 후보들이 오히려 갈등 조장에 앞장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지만, 지난 4~5일 사전투표 과정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감염자 투표 부실관리는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대선 당일에도 이미 사전투표를 마친 한 유권자가 시험 삼아 본 투표장에서 선거관리원에 신분증을 제시하자 투표용지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허술한 관리로 선거관리위원회는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은 물론 향후 부정선거 의혹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됐다.
|
새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은 물론 진영, 세대, 젠더 등 수갈래로 찢긴 갈등상을 봉합해야 하는 중책을 안고 출범한다. 전문가들도 차기 대통령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로 국민의 신뢰 회복과 통합의 정치, 치유의 리더십을 꼽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우리 사회 분열 구조가 커졌고, 이번 정권에서 특히 그 분열 구조를 키웠다”며 “차기 대통령은 분열로 인한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선으로 정치에 혐오를 느낀다는 반응이 많아졌지만, 결국 이러한 사회적 상처를 해결할 열쇠는 정치가 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는 지역, 세대, 젠더별로 갈라져 있으니 국민통합, 사회통합이 필요하다”며 “통합은 정치개혁을 통해 선거의 승자와 패자 관계없이, 또 계층에 관계없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즉 ‘대표성’이 보장받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도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할 수 있는 정치는 사라지고 무조건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기만 했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서로 대화가 가능하고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정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