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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 구슬 목걸이..1500년 전 '비화가야 지배자' 장신구 나왔다

김은비 기자I 2020.10.28 09:28:44

금동관과 목걸이·반지·허리띠 등
비화가야 꾸밈유물 일체 최초 사례
11월 5일 유튜브서 발굴현장 공개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교동 Ⅱ군 63호분에서 비화가야 지배자의 꾸밈유물인 금동관을 비롯한 장신구 일체가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비화가야는 경남 창녕 지역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가야제국의 하나다.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난다.

이번에 확인된 장신구 유물은 △높이 약 21.5㎝의 금동관 △관에 드리운 금동 드리개 및 금동 막대장식 △굵은고리귀걸이 1쌍 △유리구슬 목걸이 △은반지들 △은 허리띠 등 지배자 몸에 둘렀던 상태의 꾸밈유물 일체다.

63호분 석곽 내 피장자 꾸밈유물 노출 모습(사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비화가야의 최고 지배층 고분에서 피장자의 몸을 장식한 꾸밈유물 일체가 온전히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비화가야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 이후 진행된 약탈과 도굴로 당시 지배계층의 상징물이었던 금동관의 일부 편과 장신구만이 확인됐다.

장신구들은 피장자에 부착했던 상태대로 발견됐다. 머리 부분에서는 금동으로 만든 관(冠)이, 양쪽 귀부분에서는 금으로 만든 굵은고리귀걸이(태환이식) 1쌍이 발견됐다. 목과 가슴에는 남색 유리구슬을 3~4줄로 엮어서 만든 구슬 목걸이가, 허리에는 은으로 만든 허리띠가 있었다. 손 부분에서는 은반지들이 확인됐다.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지난 9월 발굴돼 큰 화제가 되었던 경주 황남동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장신구 일체와 비슷한 구성이다.

63호분 뚜껑돌 4매 제거 후 모습(사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이들 유물이 출토된 63호분의 석곽은 길이 640㎝, 너비 130㎝, 깊이 190㎝의 규모다. 피장자 주변에서 목질흔(木質痕)과 꺽쇠들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상자형 목관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장자의 머리 위쪽에는 토기들과 철제유물이 매납된 부장공간이, 피장자 발치 아래에는 약 40㎝ 정도 낮춘 공간(길이 220㎝, 너비 130㎝)이 확인됐다. 연구소 측은 “2명의 순장자가 안치된 공간으로 추정된다”며 “이곳에서는 순장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아 일부와 다리뼈 일부 등도 같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오는 11월 5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발굴 당시 녹화한 동영상을 공개한다. 발굴조사에 참여한 발굴단원들이 국민들과 언론의 궁금증에 실시간 댓글로 답변하는 온라인 발굴조사 설명회도 이날 함께 개최할 계획이다.

금동관 내부 직물(관모)모습(사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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