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장사 하실 분.”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김 모씨는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에서 이 단어를 본 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겉으로는 평범한 말처럼 보였지만 두부장사라는 단어가 ‘동반자살’의 초성을 딴 은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SNS의 금칙어·검색어 차단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이 단어를 입력하자 극단적 선택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다는 채팅방이 여러 개 노출됐다. 그 중에는 자신을 10대라고 소개한 채팅방 개설자도 있었다.
김 씨는 “일상적인 단어에 끔찍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점이 가장 섬뜩했다”며 “아이들이 SNS를 보다 우연히 이런 표현을 접하고, 호기심을 가져 대화에 끌려들어 갈까 봐 마음이 놓이지 않다”고 우려했다.
|
실제로 X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생명의 전화’ 번호와 함께 도움 안내 문구가 나타난다. 카카오톡에서는 관련 오픈채팅방이 노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두부장사처럼 자살을 의미하는 은어를 검색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울계(우울 계정), 자해 관련 해시태그와 함께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는 게시물이 곧바로 나타난다. 단어만 사라졌을 뿐 자살 유발 정보는 더 은밀하고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로 옮겨갔다. SNS 플랫폼의 차단을 피해 초성이나 발음이 비슷한 표현을 활용한 게시물들이 온라인 전반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살 유발·유해 정보가 청소년에게 특히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청소년기는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뇌 기능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시기로 또래 관계, 타인의 반응이나 인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보인다. 자살 관련 게시물이나 영상이 공감이나 위로의 메시지로 포장될 경우 비판적으로 걸러내기보다 감정적으로 수용하고 동일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취약성은 최근 SNS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확산 속에서 사회 전반의 자살 인식 변화와 맞물리며 더 강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발간한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청소년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자살에 대한 수용적 태도’(자살은 때때로 관련된 사람들에게 구제책이 될 수 있다, 자살만이 유일한 합리적 해결책인 상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는 5점 만점 기준으로 2013년 2.81점에서 2018년 2.90점으로 소폭 상승했다. 반면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는 인식은 같은 기간 3.61점에서 3.46점으로 낮아졌다.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인식은 약해진 반면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청소년 자살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10대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014년 4.5명에서 2023년 7.9명으로 10년 새 약 7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자살률이 27.3명으로 제자리걸음을 한 것과 달리 청소년층의 위험은 가장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절대 수준은 낮지만 자살 위험이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는 집단이 청소년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특히 청소년 자살예방이 중요한 이유는 혼자 하는 선택에서 벗어나 연결성과 확산성을 띠는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보건협회가 2022년 발표한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동반자살의 역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08~2017년 사이 국내에서 발생한 동반자살 사건 사망자 1325명 가운데 청소년(0~19세)은 256명으로, 전체의 19.3%를 차지했다. 해당 조사가 SNS 이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이전 시기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SNS가 일상화된 이후에는 청소년 동반자살이 더 빠른 속도로 연결·확산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산하 기관인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을 통해 온라인상의 자살유발·유해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이를 각 플랫폼과 연락을 주고받는 핫라인을 통해 삭제 요청을 하고 있다. 카카오, X 등 국내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기업과 협력 체계도 구축해 신고·삭제를 신속히 처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자살유발·유해 정보 삭제 건수는 17만 6163건으로 전체 신고 건수 60만 3383건의 3분의 1 수준에 그쳐 대응이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카오는 “은어와 우회 표현이 빠르게 등장하는 특성상 대응에는 일정한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금칙어 목록은 내부 모니터링과 외부 기관, 이용자 제보 등을 통해 최대한 신속하게 업데이트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청소년 자살 대응 현장에서 잘 알려진 은어가 카톡 오픈채팅방과 X 등 주요 플랫폼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민관 협력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키운다. 온라인에서 연결되는 자살 위험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신고와 삭제에 의존하는 현재 방식에서 벗어나 대응 속도와 책임 구조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남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단어만 지우는 ‘두더지 잡기’식 대응으로는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을 결코 지킬 수 없다”며 “정부와 플랫폼 기업은 우회 표현까지 걸러내는 인공지능(AI) 모니터링 등 선제적 차단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청소년과 가족의 마음 건강을 조기에 돌볼 수 있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