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속 요리프로그램들. 먹는 걸 보여주는 ‘먹방’ 대신 직접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쿡방’이 인기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과 올리브채널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 JTBC ‘냉장고를 부탁해’와 올리브채널 ‘한식대첩’(사진=CJ E&M, JTBC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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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삼포세대’가 요리에 빠졌다. 더는 요리가 주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애·결혼·출산을 기약 없이 미루거나 포기한 20~30세대가 칼을 잡고 앞치마를 두르고 나섰다. 이를 반영하듯 TV에서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다. 주방가전시장도 커졌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삼포세대’가 요리를 즐겨 생긴 변화다.
‘삼포세대’가 자신을 위로할 마지막 탈출구로 요리를 즐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삼포세대’에 분 요리 열풍은 팍팍한 현실을 견디기 위한 자기중심적인 작은 사치”라고 봤다. ‘삼포세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세상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들이 택한 건 ‘나’와 ‘현실’의 만족이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게 바로 요리다. ‘삼포세대’가 절망 속에 택한 ‘작은 행복’인 셈이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삼포세대’는 사회적 성취를 희망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한 이들”이라며 “대신 그 희망을 내 안에서 찾는 식으로 행복을 찾는 관점을 바꾸기 마련인데 그 실현 방법으로 요리를 택한 건 요리가 자기만족감을 충분히 줄 수 있는데다 경쟁 없이 성취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경제불황으로 돈과 출세를 포기한 일본의 ‘사토리세대’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적응방식으로 일상 속 작은 행복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하다.
| (자료 분석=오픈마켓 11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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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세대’의 요리에 대한 높은 관심은 시장까지 흔들었다. 5일 오픈마켓 11번가에 따르면 1~2월 전기레인지 등 주방 가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1%가 늘었다. 특히 ‘삼포세대’ 남성의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30대를 주축으로 한 남성 소비자 구매 비중이 54%를 기록한 것. 이는 전년 동기보다 77%나 는 수치다. 주방 가전 매출에서 남성 비중이 여성보다 높았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1번가 박래석 주방가전 담당 MD는 “남성 1인 가구의 증가”를 이유로 꼽았다. CJ E&M 직장인 요리동호회 멘토인 김보선 푸드스타일리스트는 “20~30대 혼자 사는 이들이 한 끼라도 제대로 해 먹자는 생각을 해 요리 강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며 “요청이 많아 최근에는 남성들만을 위한 요리강좌까지 만들었을 정도”라고 현장 분위기를 들려줬다.
‘삼포세대’가 요리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면서 TV 요리 프로그램도 변하고 있다. ‘삼포세대’가 원하는 건 남이 만든 것을 ‘보는 요리’와 ‘먹는 요리’를 넘어섰다. 일상에서 직접 소탈하게 해 먹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이로 인해 요리프로그램에서는 패스트푸드를 손쉽게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김풍 만화가 등 ‘셰프테이너’가 인기다. 형식도 고급 요리를 소개하거나 먹는 걸 보여주는 ‘먹방’(먹는 방송)에서 ‘쿡방’(쿠킹+방송·요리하는 방송)으로 변하는 추세다. 남자들이 외딴 곳에서 한 끼를 해 먹는 과정을 보여주는 tvN ‘삼시세끼’와 냉장고 속 음식으로 15분 안에 요리하는 걸 보여주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인기를 얻는 이유다.
요리는 자신만의 조리법대로 만드는 과정에서 개성까지 찾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요리를 직업으로 택하는 ‘삼포세대’도 늘 것이란 전망이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 사이 육체노동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브라운칼라’ 직종이 뜨는데 요리 분야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