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똥 치우면 하루 다 가죠”…연휴에도 문 여는 ‘동물보호소’

이재은 기자I 2025.01.29 17:02:38

동물권단체 ‘케어’ 운영 보호소 파주 ‘옐로우독’
울진산불, 불법도살장 구조 대형 믹스견들 입소
“품종 선호 존재…종에 ‘절대적 기준’ 안 뒀으면”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작년 8개월 동안에만 10만㎞를 탔어요. 위기에 놓인 아이들을 구조하다 보니 전국 방방곡곡을 차로 다니게 된 거죠. 여기 있는 애들 대부분은 산불, 불법 도살 현장에서 집단으로 구조된 거예요.”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옐로우독’ 보호소에서 캐나다로 입양을 앞둔 ‘울진돌’(4)이 케어 활동가 B씨가 손에 쥔 간식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지난 28일 오후 12시께 경기 파주에 있는 보호소 ‘옐로우독’에서는 입소견을 돌보는 활동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상근하는 활동가 서너 명이 견사를 일일이 들어갔다 나오며 배설물을 치우거나 간식을 챙겨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입구 오른편 닭장에는 불법 개 농장에서 함께 구조된 닭 20여 마리가, 그 위로는 닭 모이를 보고 찾아오는 참새 10여 마리가 무리 지어 있었다.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옐로우독’ 보호소 내부 견사 중앙 통로에 입소견들의 배설물이 쌓인 수레가 놓여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옐로우독은 2023년 1000평 규모로 개소한 동물권단체 ‘케어’ 산하 보호소로 비슷한 사연을 가진 개들이 모여 있다. 2022년 울진 산불을 비롯해 2023년 남양주 불법 개 도살장, 춘천 도견장 등 위기 상황에서 구조된 200여 마리가 보호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상근 활동가는 4명뿐이지만 이곳을 365일 지킨다. 설 연휴여도, 눈발이 휘날리더라도 활동가들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보호소 인근으로 거처까지 옮겼다는 A 활동가는 “문 열자마자 아이들 밥 주고 똥 치우고 물 갈아주고 다시 똥 치우고 하면 하루가 끝나 있다. 인원이 적어 종일 작업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 똑같은 개인데 품종견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고 이런 ‘믹스 도사견’들은 국외로만 입양 가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옐로우독’ 보호소에서 케어 활동가 C씨가 한 입소견에게 간식을 내밀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실제로 각 견사에는 몸무게가 40~60㎏에 달하는 대형 믹스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름과 구조 위치가 나와 있는 팻말에는 지금은 사라진 개 농장, 도살장이 있던 ‘남양주’, ‘울진’ 등 장소가 적혀 있었다. 나이는 대게 5살 이하였으며 성격은 대부분 ‘온순함’, ‘겁이 많음’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활동가들이 견사를 다니며 간식을 줄 때면 앞까지 나와 반기는 개들이 있는 한편 구석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구조 장소에 ‘울진’이라고 적힌 입소견들이 유독 견사 가장자리를 지키는 듯했다.

“울진 산불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과거 화재 현장에서 목줄에 묶인 채 숨을 거둔 아이들을 구조했던 경험이 있어 당시에도 출동했었는데요. 울진에 도착하니 산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있더라고요. 일단 구조할 수 있는 친구들은 동물병원으로 옮기고 주변을 살피는데 개 도살장이 나왔습니다. 일부는 뜬장 안에서 불에 탄 채 방치돼 있었고요. 총 190여 마리를 구했는데 지금도 보면 화상 흉터가 남아 있는 애들이 있어요. 울진에서 구조한 친구들이 유달리 순해서일까요. 그 현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요.”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옐로우독’ 보호소에서 입양을 앞둔 ‘울진돌’(4)이 케어 활동가 B씨를 바라보고 있다. 울진돌은 2023년 발생한 울진 산불 당시 화마가 휩쓴 불법 개 도살장 내부의 뜬장에 갇혔다가 구조됐다. (사진=이재은 기자)
구조된 개들이 보금자리를 갖게 된 지도 2년 차, 세상은 조금씩 바뀌었다. 지난해 8월에는 ‘개 식용 금지법’이 시행됐으며 입소견들이 갇혀 있던 불법 개 도살장 등은 일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먹기 위해” 사람이 키운 개들이 일상을 완전히 되찾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게 활동가들의 설명이다.

“지금 이 시설 한 곳을 유지하는 데도 연간 수억 원대 예산이 필요해요. 한 달 사룟값만 해도 4.5t가량이죠. 불법 개 농장, 도살장에서 구조되는 아이들은 주로 대형견들이니 소형견, 중형견에 비해 돈이 많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요. 병원비도 마찬가지예요. 체중 수에 따라 검진, 수술 비용이 책정되니까요. 무엇보다 법 시행에 따라 이런 대형견들이 지자체 보호소 관할로 들어갈 텐데 정부가 어떻게 관리할지 의문이 들어요. 개 농장 등이 문을 닫게 되면 옐로우독과 비슷한 수준의 보호소가 수십 곳 운영돼야 할 텐데 정부가 편성한 예산으로는 부족해 보이거든요.”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옐로우독’ 보호소에서 2023년 경북 울진 산불 당시 구조된 입소견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문제는 이 같은 대형견들은 입양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국내는 아파트 생활 인구가 지배적이고 큰 개를 기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기에 입양 희망자들 대부분은 국외 거주자라는 것이다.

“옐로우독에 있는 대형 믹스견들은 국내로 입양되는 비율이 정말 낮아요. 성격도 정말 순하고 착한데 말이죠. 몸집이 크지 않거나 품종견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이런 친구들도 정말 좋은 실내견이 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도 대형 믹스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점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임보(임시 보호)하시는 분들이 생겨나고 저도 산책하다 보면 반려인과 걷고 있는 대형 믹스견을 볼 때도 있으니까요. 종과 크기를 절대적 기준으로 두고 양육 여부를 결정하는 현상이 조금씩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해 서울시 노원구의 한 가정에서 방치됐다가 구조된 ‘여름이’가 지난 28일 옐로우독 상근 활동가 매트씨의 품에 안겨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수레를 끌고 한 차례 청소를 마친 활동가들은 또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옐로우독 상주 인원을 제외하고는 학대 신고가 접수된 곳으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묻어 있었지만 장비를 챙기는 이들의 발걸음은 무겁지만은 않아 보였다.

“오늘 새벽에도 학대 의심 건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타 지역에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명절이라도 쉬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으로 가는 거죠.”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