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in 설시연 작가] “곰뱅이(許可) 텄다.” 마을 최고 양반의 허락이 떨어졌다. 길놀이를 시작으로 남사당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남사당은 우리나라 최초 대중 연예 집단이다. 찰진 재담과 암팡진 기예로 백성의 한과 흥을 매만져 주었다. 안성에는, 남사당의 예술혼을 이으며 남사당놀이 세계화에 힘쓰고 있는 ‘바우덕이 풍물단’이 있다. 원형 공연장에 둘러앉아 쌍방향 흥의 소통을 느껴보자. 한 판 신명 나게 놀아보자.
‘경기와 호남의 갈림길이요, 삼남(충청, 전라, 경상)의 요충이렷다.’ ‘허생전’의 허생은 이곳에서 과일을 사재기하고 되팔아 큰 이윤을 남겼다. 전국의 물자와 사람이 모이던 곳. 조선시대 대구, 전주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히던 곳. 바로 안성이다. 시장이 발달했으니 전국 놀이패들의 주 무대가 되는 것도 당연했을 터. 놀이패 중 규모나 내용 면에서 첫손에 꼽히던 남사당의 본거지 또한 안성이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빛나는 남사당놀이를 ‘안성 남사당 공연장’에서 만난다.
바우덕이(본명 김암덕). 남사당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 꼭두쇠(우두머리). 당대 최고의 연예스타. 다섯 살 남사당에 남겨진 후 열여덟 살 흥선 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정3품)를 받기까지의 이야기가 풍물놀이, 버나(접시 돌리기), 어름(줄타기) 등의 여섯 마당으로 펼쳐진다. 외줄 위 몸놀림으로 관객을 오그라들게도 하고, 맛깔난 재담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하기도 하는 어름사니(줄꾼)의 매력에 홀딱 빠져든다. 무사 공연을 기원하는 고사상이 차려졌던 기억도 잠깐. 숨 가쁘게 몰아가는 2시간 흥의 잔치에, 어느덧 뒤풀이에 어우러져 무대를 도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간: 3월~11월 (토요일 공연 16:00~18:00 / 일요일 공연 14:00~16:00)
대중교통: 안성 시내 시내버스 15-1 (상남, 북좌리행)
[주변 관광지 1] 남사당의 흔적을 찾다, 청룡사와 바우덕이 사당
유랑을 접어야 하는 겨울에 남사당을 품어준 곳. 하늘을 지붕 삼아 떠나는 그들에게 신표(신분증명)를 내준 곳. 그곳이 바로 청룡사다. 고려 시대 창건된 천년고찰로, 대웅전 기둥은 휘어진 아름드리나무를 다듬지 않고 사용했다. 세월의 무게가 버거웠을까? 현재 보수공사 중으로 2019년 가을쯤 다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아쉬운 마음에 바우덕이 사당으로 향한다. 바우덕이는 스물셋 나이에 눈을 감으며 시냇물처럼 멀리멀리 흘러가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시선 위에 내 시선을 얹는다.
[주변 관광지 2] 드라마 ‘도깨비’의 기억을 들추다, 석남사와 미리내 성지
발보다 눈이 먼저 긴 돌계단을 오른다. 높은 곳의 대웅전이 고즈넉하게 여행자를 굽어보고 있다. 도깨비 김신은 이 계단에서 풍등을 날렸다. 6월 23일엔 천년고찰 석남사에서 소원을 실어 풍등을 날릴 수 있다.
미리내 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도깨비 신부 은탁이 처음으로 도깨비를 소환했던 ‘103위 시성 기념성당’이 이곳에 있다. 삼나무, 느티나무 등 초록이 우거진 길을 걷다 보면 마음 또한 초록으로 번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소중한 것들을 소환하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