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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껏 달아올랐다가 한풀 꺾여 시무룩해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이 올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12월 한 차례씩 남은 메이저경매를 통해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빙 돌아 찾아내 꺼낸 것은 ‘그래도 다시 한번’이라 할 만한 ‘국내 근현대 미술거장의 수작’이다. 김환기를 앞세워 박수근·유영국·권진규·장욱진 등 어디 내놔도 기본은 해왔던 작가들을 선두에 배치했다. 이들을 실탄 삼아 두 경매사가 12월에 내놓을 출품작은 165점, 225억원어치다. 먼저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진행할 ‘제170회 미술품 경매’에는 80점 약 125억원어치가 나선다. 이어 다음날인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여는 ‘12월 경매’에는 85점 약 100억원어치가 신고를 마쳤다.
지난 9월 초 ‘프리즈·키아프 서울’을 전후로 국내 미술시장은 하락세로 돌아서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잡혔던 터다. 크고 작은 지표들이 국내 미술시장에 연이어 ‘빨간불’을 쏘아댔는데. 이는 여지없이 ‘2022년 3분기 미술시장 분석’에 그대로 드러났던 터.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올해 3분기 국내 경매시장의 낙찰총액을 439억 4100만원으로 집계하고, 지난해 3분기에 쓴 953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46%)고 발표했다. 낙찰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출품한 6404점 중 3880점을 팔아 60.59%를 써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70.05%(출품수 8071점, 낙찰수 5654점)에서 10%가 빠진 성적이다.
연달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7∼10월 국내 미술품 경매의 낙찰총액을 366억 7000만원으로 합산하고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해 62% 감소했다는 통계를 내놨다. 한창 코로나19 여파에 시달리던 2020년에 비해서도 18%가 떨어진 데다가 최근 3년간에 걸쳐 집계한 3분기 낙찰총액 중 가장 낮은 결과란 설명도 붙였다. 이 기간 국내 메이저경매의 평균 낙찰률은 65.87%. 올해 상반기 81%까지 닿았던 수치는 확연히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10월부터 시작한 4분기 그림장사가 신통했던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낙엽 따라 우수수 유찰’이라고 할까. 경매마다 한두 번 응찰로 ‘손쉬운’ 낙찰이 마무리되거나 그나마 응찰 자체가 없는 ‘유찰’ 탓에 서둘러 다음 순서로 넘어가기 일쑤. 경매를 열어보기도 전 뜨는 무더기 ‘출품취소’는 억지로 떠안은 덤이라고 할까. 작품을 팔고사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아주 드물었단 얘기다.
출품작에 문제라도 있었다면 바로잡기라도 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김환기·박서보·이우환·김창열·윤형근·이건용·김구림·이강소 등, 두 경매가 단골이자 인기 레퍼토리로 삼는 근현대작가들의 작품이 골고루 나섰는데도 말이다. 불과 1년 남짓, 아니 올봄까지만 해도 ‘닥치고 컬렉션’에 줄줄이 입성했던 작가와 작품들이 아니었나.
◇“그래도 근현대작가뿐”…블루칩 대명사 김환기 앞세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결론은 다시 국내 ‘근현대작가’다. 경매사 입장에선 밉든 곱든 결국 믿을 카드는 ‘이뿐’이기도 한데다가 국내 큰손의 지갑을 움직일 동력도 ‘이뿐’이란 판단이 작용했을 거다. 이 판단이 컬렉터 사정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다. 주요 작가의 주요 작품은 경제지표를 초월해 움직이는 법이니까. 우연찮은 기회를 놓치면 다신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제지표보다 강력한 경험지표가 작동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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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비슷하니 ‘그림’도 비슷해지나. 올해 마지막 대전인 이번 양쪽 장은 경매 최고가를 다툴 ‘대표작’까지 묘하게 겹쳐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미술시장의 ‘호황·불황’을 가늠케 한 잣대로 작용해온 김환기가 양쪽에 다시 등장했다. ‘블루오션의 돛’이라 불렸던 김환기, 그중 특히 전면점화는 미술시장의 바로미터였더랬다. 불황의 끝을 달리기 전인 2020년 이전 최소 3년간의 미술시장은 김환기의 전면점화가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시장이 가라앉으며 김환기도 함께 가라앉았다. 큰손이 지갑을 닫으면서 거래 자체가 성사되질 못했던 거다. 이후 시장이 회복된 이후에도 틈틈이 김환기의 작품이 경매시장을 두들기는 했지만 긴 침묵을 확실히 깨진 못했더랬다.
이번 서울옥션에선 푸른색 전면점화 ‘무제’(1970·254×127.7㎝)가, 케이옥션에선 푸른색 반추상화 ‘새와 달’(1958·68×80㎝)이 등판한다. ‘무제’는 김환기의 뉴욕시대를 대표하는 점화, 그중 절정의 색감이라고 평가하는 ‘환기블루’ 중 한 점이다. 무엇보다 세로길이가 250㎝를 넘기는 대작인데다 주조색인 푸른색 외에 초록색을 상단과 우측하단에 들여 화면을 부드럽고 미묘하게 융화한 특징이 돋보인다. 추정가는 45억∼65억원이다.
‘새와 달’은 김환기의 파리시대를 대표한다. 항아리·매화·사슴·새·산·달 등의 대표도상으로 한국적 정서를 파고들던 그 시절이다. 파리에서 체득한 앵포르멜(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을 녹인 화면은 하늘과 달을 상징한 푸르고 둥근 형체 위에 두 마리의 새가 날개짓하는 서정성을 가득 뿌려냈다. 추정가는 22억∼3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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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대결 아닌 맞대결…박수근vs박수근 유영국vs유영국
마치 두 경매사의 맞대결처럼 보이는 작가의 출품작은 더 있다. 또 다른 페어는 박수근. 서울옥션은 ‘시장의 여인’(1960s·30×28.5㎝)을, 케이옥션은 ‘우산을 쓴 노인’(1960·28×16.5㎝)을 각각 내놓는다. 두 작품 모두 작가의 상징성이 도드라진다. ‘시장의 여인’이 별다른 배경 없이 한국적 여인으로만 화면을 채운, 가장 보편적인 구성을 띤 박수근의 대표작이라면 말이다. ‘우산을 쓴 노인’은 우산·남성 등 박수근이 흔히 내보이지 않던 소재를 화면에 들인 가장 희귀한 구성이라 할 만해서다. ‘시장의 여인’은 추정가 10억∼15억원, ‘우산을 쓴 노인’은 4억∼7억원을 달고 새 주인을 찾는다.
최근 침체기의 경매시장에서 열 일을 하고 있는 유영국도 두 경매사가 빼놓지 않았다. 서울옥션은 초록을 주조색으로 뾰족한 산풍경을 그린 ‘워크’(Work·1975·50×73㎝)를, 케이옥션은 회색산 위아래로 분홍 하늘과 갈색 땅을 펼쳐낸 ‘워크’(1991·65.1×90.9㎝)를 꺼내들었다. 서울옥션의 ‘워크’는 추정가 2억 2000만∼4억 5000만원, 케이옥션의 ‘워크’는 3억 2000만∼5억원을 달고 ‘유종의 미’가 될 올해 마지막 응찰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