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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고된 삶을 견디게 하는 건, 서로 기대어 나누는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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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기자I 2026.08.26 05: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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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소설집 '새들의 사회성' 펴내
피의자·피해자로 만난 고교 동창 등
불안한 청춘 그린 단편 8개 실어
"저마다 문제 안고 사는 인물들
타인과 맺는 관계 깊이 들여다봐"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편혜영 작가(사진=ⓒ정멜멜).
편혜영 작가(사진=ⓒ정멜멜).
이상문학상과 셜리 잭슨상 등 국내외 주요 문학상을 두루 수상한 소설가 편혜영(54)이 5년 만에 소설집 ‘새들의 사회성’으로 돌아왔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아오이 가든’(2005), ‘사육장 쪽으로’(2007) 등을 통해 섬뜩하고 기괴한 상상력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평범한 일상에 스며드는 불안과 균열을 집요하게 포착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소설집에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뎌내는 인물들을 그린 단편 8편이 실렸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발표한 작품들이다.

편 작가는 25일 이데일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인물이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타인과 맺는 관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다”며 “삶이 당장 나아지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누군가 곁에 닿아 있다는 감각만으로도 살아갈 의미를 얻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저 곁에 있어서 생기는 온기”

작품 속 인물들은 주로 사회적·심리적·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젊은이들이다. 표제작 ‘새들의 사회성’은 불안정한 처지의 제약회사 인턴 ‘나’와 고교 동창 신도의 이야기다. ‘나’는 은행 자동화기기(ATM)에서 발견한 지갑에 손을 댔다가 절도 혐의로 경찰서에 가고, 신고자인 신도와 뜻밖의 재회를 한다. 피의자와 피해자로 만난 두 사람은 ‘빚’으로 얽혀 기묘한 관계를 이어간다.

편 작가는 “신도는 보이지 않는 새를 주인공에게 선물하고, 주인공은 그 새를 볼 수 없으면서 마음속으로 새의 움직임을 느낀다”며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나 사랑 같은 관계가 생겨나는 순간이라고 여기며 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곁에 남아 서로 기대는 데에는 거창한 목적이나 뚜렷한 의도가 없다”면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서 생기는 온기를 나누는 관계라는 점에서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아예 지금의 삶에서 ‘증발’하고 싶은 사람들을 소재로 삼는다. 의뢰인이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 돌연 사라진 것처럼 꾸미거나 교통사고를 위장해 세상에서 흔적을 지워주는 ‘실종 대행업자’가 주인공이다. 사업을 접으려던 그는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라며 자신을 사라지게 해달라고 찾아온 여자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뜻밖의 여정에 나선다.

편 작가가 바라보는 인물들은 대개 자신의 힘만으로는 삶의 조건을 쉽게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소설이 이들을 극적인 구원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대신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에 시선을 둔다.

2022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 ‘포도밭 묘지’에는 이런 시선이 노동의 문제로 이어진다. 상고 시절부터 사회 초년생 때까지 함께한 네 친구는 성실하게 일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마주한다. 편 작가는 산업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청년 노동자들의 뉴스를 접한 뒤 이 작품을 구상했다.

편 작가는 “성실함은 분명 큰 미덕이지만 어떤 구조 안에서는 오히려 착취되기 쉬운 조건이 되기도 한다”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각과 선택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삶을 흔드는 것은 부당한 현실만이 아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의 부재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삶의 모습을 뒤늦게 돌아보게 한다. ‘초록 스웨터’에서 딸은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스웨터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엄마의 옛 친구들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여기에는 편 작가 자신의 경험도 배어 있다. 그는 “오래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한동안 엄마가 해놓은 반찬을 차마 버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곁에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떠나간 사람의 모습을 뒤늦게 상상하고 이해해보는 과정, 그 흔적을 통해 함께 있었던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 나에게는 애도”라고 전했다.

그가 20여 년간 소설을 쓰며 끊임없이 들여다본 대상은 결국 ‘사람’이다. 앞으로도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불안과 상실, 취약함을 계속 들여다볼 생각이다. 편 작가는 “차기작은 이번 소설집에서 관심을 두었던 ‘사람은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가’라는 질문과도 어느 정도 이어진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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