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장동혁의 장외투쟁 vs 이회창의 장외투쟁 [이슈 현미경]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김성곤 기자I 2026.09.24 10:00:04

Google 검색에서 이데일리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장동혁, 정국주도권 장악용 장외투쟁 저울질
-정치적 위상 강화에도 극우 이미지 고착화 우려
-이회창 장외투쟁, 원내외 병행투쟁 투트랙 전략
-헌정 사상 최초 ‘특별검사제 도입’ 성과도 뚜렷

22일 국회 본청 앞에서 국민의힘이 주최한 이재명 정권 실정 대국민 보고대회가 열리고 있다. 2(사진=연합뉴스)
22일 국회 본청 앞에서 국민의힘이 주최한 이재명 정권 실정 대국민 보고대회가 열리고 있다. 2(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장외투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재명정부의 지지율 하락과 인사참사 국면에서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의회주의 대원칙은 원내 투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감을 앞두고 장외투쟁은 적잖은 논란이다. 본회의와 주요 상임위에서 법안·정책·예산·인사로 대정부 비판·견제가 가능한데도 굳이 거리로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장외투쟁의 성과와 출구전략이 불투명하다. 자칫하면 빈손 복귀도 배제할 수 없다. 장 대표의 경우 지난 1월 쌍특검 촉구 단식투쟁에 나섰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유로 중단하면서 체면을 구긴 바 있다. 과거 보수정당의 장외투쟁 성공 사례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표적이다. 원내외 투쟁을 결합한 투트랙 전략과 이 전 총재의 강력한 정치적 카리스마로 가능했다.

‘운칠기삼’ 장동혁, 장외투쟁으로 정치적 위상 강화 추진

장 대표의 정치는 이른바 ‘운칠기삼’이다. 6.3 지방선거 참패 이후 대표직 사퇴가 정해진 수순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무소속 의원,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이 최대 격전지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장 대표의 지원사격과는 무관했다. 때마침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이후 비당권파 징계 갈등에 ‘장동혁 퇴진론’이 거셌지만 뜻밖에도 민주당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8.17 전당대회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계파 갈등에 국민의힘 내분은 소강상태로 보일 정도였다. 최근에는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김승원 전 법무장관 후보자 낙마를 주도하면서 국민의힘도 전체적으로 정치적 활로를 얻었다. 물론 장 대표 주도의 정치적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현장에서 파악한 농지 전수조사의 문제점을 정치 쟁점화하면서 정부의 부작용 인정과 수습책 마련을 이끌어냈다.

대통령 지지율 급락과 인사참사로 당정청은 사실상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상황이다. 야당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장 대표는 지지층 결집을 통해 흔들리던 정치적 위상을 보다 강화할 수 있다. 문제는 109석 의석의 제1야당이 굳이 거리로 나갈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대미 투자, 북미 대화, 호르무즈 파병, 청와대 인적 쇄신 등 거시 담론부터 수시 먹통 사태, 농지 전수조사 논란, 보완수사권 폐지 등 민생 현안도 산적하다. 무엇보다 장외투쟁은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전광훈 목사와 전한길 씨 등이 대거 합류할 경우 이를 막을 물리적 방법이 없다. 윤어게인 논란이 불거질 경우 국민의힘 외연 확장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 지난 22일 국회 본관 앞 중앙계단에서 열린 ‘이재명정권 실정 대국민 보고대회’에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시위대들이 눈에 띄었다. 장 대표 주도의 장외투쟁은 정치적 기회이면서도 스스로를 갉아먹은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목표·출구전략 뚜렷했던 이회창…장외투쟁 성과 ‘뚜렷’

장 대표가 참고해볼 대목은 과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장외투쟁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97년·2002년·2007년 대선에 3차례 나섰다가 모두 실패한 비운의 정치인이다. 한나라당 총재 시절에는 현직 대통령에 버금가는 막강 권력자였다. 김대중정부 시절 야당 지도자로서 이 전 총재가 주도한 장외투쟁은 대체로 성공작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의회주의 파괴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뚜렷한 명분과 이 전 총재의 카리스마는 플러스 요인이었다. 아울러 한나라당 의석이 과반에 육박하는 1당이라는 점에서 장외투쟁 효과는 더욱 배가됐다.

특히 이 전 총재는 무작정 강경 일변도의 장외투쟁만을 고집한 게 아니었다. 때로는 유연한 원내 복귀로 알토란 같은 실리를 적잖게 챙겼다. 특히 1999년 옷로비 사건 및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을 둘러싼 장외투쟁에서 특검제 도입과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했고, 여야 합의로 헌정 사상 최초의 ‘특검 도입’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이밖에 의원 빼가기 사정에 반발한 장외투쟁에서는 와해 직전의 당을 되살렸고 김대중정부의 권력형 비리에 반발한 장외투쟁에서는 대부분 국정조사 도입이나 장관직 사퇴 요구 등을 관철시켰다. 아울러 2000년대 전후 시기의 장외투쟁은 실시간 정보소통이 가능한 스마트폰 위주의 정치·언론 환경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정부투쟁의 일환으로서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이회창 전 총재를 오랜 기간 보좌해온 한 전직 의원은 “진보 진영의 실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보수는 침착한 플레이보다는 여전히 윤석열·박근혜 전 대통령의 낡은 이미지에 기대어 무리한 자멸을 이어가고 있다”며 “이재명정부의 실정에도 반사이익이 전혀 없는 야권의 상황을 고려할 때 ‘법과 원칙’에 기반한 철저한 국정 시스템화 능력이 독보적이었던 이회창 전 총재의 리더십이 최근 절실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