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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처음으로 한은 총재 없이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가 개최된 가운데 기준금리를 변경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가 내달 26일 금통위 회의를 주재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한 달도 못 기다리겠다며 서둘러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물가 상승세와 미국의 돈줄 죄기 가속화 정도가 심상치 않아 금리 인상을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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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 4% 물가 전망도…하반기에도 물가 별로 안 떨어진다
한은 금통위는 14일 금통위 의장 직무 대행위원인 주상영 위원 주재하에 정기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데일리가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경제연구소 연구원 1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2명이 4월 금리 인상, 10명이 5월 인상을 전망했는데 이러한 설문 결과보다 더 빠른 인상이다. 금융투자협회가 채권 보유·운용 관련 종사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4월 인상과 5월 인상이 절반씩 나뉘었을 정도로 팽팽했다.
금통위가 총재가 없는 상황에서도 조속한 금리 인상을 결정한 것은 ‘물가’ 때문이다. 2월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3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4.1%를 기록,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4%대 물가상승을 마냥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 탓으로 돌리긴 어려운 상황이다. 3월 4.1% 물가 상승은 석유류(1.32%포인트) 영향이 가장 크지만 외식(0.83%포인트)·가공식품(0.55%포인트) 등 수요 측면 영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3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는 2.9% 올라 2009년 6월(3.0%)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1년 후 물가상승률을 보여주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2.9%로 2014년 4월(2.9%) 이후 7년 11개월래 가장 높았다. 이는 한은이 금리를 통해 수요를 둔화시켜 물가를 안정시킬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하반기에는 물가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보이지만 높은 수준의 상승률은 계속될 전망이다. 작년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는 각각 17.6%, 6.4% 올라 13년·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러한 원가 상승 부담이 작년말부터 외식, 가공식품 등에 본격적으로 전가되고 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1220~1230원대까지 올라와 원화 가치가 떨어진 상황도 수입물가를 높이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제조업체들이 원가 부담을 덜어내려 제품 가격을 인상하려는 행보가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은 당분간 월 4%대 물가상승률이 불가피하고 올 연간 물가 전망도 2월(3.1%) 예상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한금융투자는 연간 4% 물가도 전망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도 한은 금리 인상에 힘을 실어준다. 연준이 5월 3일~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정책금리가 0.50%포인트 인상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양적긴축(QT) 규모도 3월 의사록에서 제시한 월 950억달러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준의 최종 정책금리가 3%를 넘을 것이란 시장 전망이 형성되는 등 연내 한미 정책금리간 역전이 예상된다. 양국간 금리가 역전됐던 2018~2019년 사례를 들어 자본유출 우려는 없을 것이란 의견이 많지만 환율이 1200원대로 올라선 데다 우리나라 경기에 영향을 주는 중국 경기둔화 우려도 있어 자본의 흐름은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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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론 ‘성장’이냐 ‘물가’냐 딜레마 연속
앞으로 한은의 금리 인상 행보는 딜레마의 연속일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5월 성장률을 종전(3.0%)보다 하향 조정하고 물가상승률은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성장률 3.0%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무력충돌이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수출의 14% 가량을 차지하는 유럽연합(EU)의 경기 둔화 우려가 반영될 전망이다. 물가만 보고 금리를 올리기엔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특히 통화정책은 최소한 6개월 뒤에야 효과를 발휘해 실물경제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는데 물가상승세는 상반기 고점을 찍고 서서히 꺾일 가능성이 높고 경기는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다면 한은이 앞으로 금리를 조정할 때 물가에 무게를 둬야 할지, 경기를 보고 가야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커질 전망이다.
한은이 작년 8월부터 네 차례 금리를 올리면서 ‘선제적 대응’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국고채 금리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미 3%를 훌쩍 넘어 향후 1년내 기준금리가 2.50%까지 오를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다만 11일엔 3년물과 30년물간 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역전되고 5년물과 10년물 격차가 0.002%포인트로 좁혀지는 등 현재의 국고채 금리는 빠른 금리 인상 전망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도 함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