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프·프리즈 2026’ 폐막 결산] 초고가보다 중저가 작품 출품·판매로 프리즈 국제갤러리서 내놓은 ‘유영국’ 올해 키아프리즈서 가장 비싸게 팔려 ‘첫 계약 5년’ 중 마지막 공동 개최로 내년부터 분리 진행…프리즈는 DDP서 판매량·관람객수 등 키아프 고심 클 것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미국 갤러리 하우저앤워스에 걸린 조지 콘도의 대작 ‘파란색 대각선 추상화’(2023)는 지나가는 관람객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붙들었다. 작품은 ‘키아프리즈’를 통틀어 최고가인 350만달러(약 48억원)에 출품해 관심을 끌었으나 판매로 연결되진 못했다. 나흘간 일정을 마치고 5일 폐막한 ‘프리즈 서울’에는 지난해 수준인 7만여 명이 다녀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째 프리즈 같지 않네요. 한국 갤러리가 너무 많이 보여요. 못 보던 작품들만도 아니어서 같은 작가의 좀 더 비싼, 그러니까 키아프의 고급 버전이라고 해도 믿겠어요”(‘프리즈 서울 2026’ 한 관람객).
2022년부터 5회 연속 ‘프리즈 서울’을 찾았다는 한 컬렉터(50대 여성, 서울 거주)는 올해 프리즈 분위기가 적잖이 당황스럽다고 했다. 첫해에 ‘초고가 대작’ 행진을 벌였던 프리즈가 5회째에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다고도 했다. 그랬다. 이 컬렉터는 비교적 정확하게 프리즈의 변화를 꿰고 있었다.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데이비드 즈위너 부스에 나온 쿠사마 야요이의 색을 입힌 청동조각 ‘내 마음을 온전히 담아 하늘에 바치는 꽃들’(2018). 작품은 오가는 관람객들이 눈길과 발길을 쉼없이 붙들었다(사진=이영훈 기자).
처음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한 2022년 1회차는 언감생심 넘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해외 유명작가의 걸작이 한 부스 건너 하나씩 걸렸으니까. 파블로 피카소의 ‘방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1937)이 가장 비싼 작품으로 소개됐더랬다. 4500만달러(당시 약 613억원). 물론 팔리진 않았지만 한 지붕 아래서 공동개최한 ‘키아프 서울’을 기죽이기에는 충분했다. 당시 프리즈에 나선 한국 갤러리는 12개뿐이었다.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프랑스의 맹뉘르갤러리에 내건 이우환의 ‘대화’(2018)가 보인다. 국내에서 제대로 소개된 적 없는, 붉고 푸른 큰 점의 대비가 크고 선명한 작품에 프리즈 관람객의 시선이 쏠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하지만 더 이상 초고가 대작은 ‘프리즈 서울’에 걸리지 않았다.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아시아 시장 확장’이라는 프리즈 전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했다. 2024년 3회차에 ‘프리즈 서울’은 “110여개 갤러리 중 63%가 아시아 기반으로 그중 31개는 한국 갤러리”라고 했던 거다. 그러더니 결국 5회차인 올해는 133개 참여 갤리리 중 57개를 한국 갤러리로 채운 거다. 굳이 한국 갤러리를 배려해서, 혹은 한국 갤러리의 위상이 높아져서라는 해석보단 “해외 유수 갤러리가 다수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정확해 보인다. 사실 그랬으니까.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한 관람객이 국내 PKM갤러리가 내놓은 구정아의 조각작품 ‘SpST Y’(2024)를 휴대폰 카메라에 정성스럽게 담고 있다. 뒤쪽으로 윤형근의 ‘엄버 블루’(1985)가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래서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유영국의 ‘워크’(1971)다. 한국의 국제갤러리가 출품한 이 작품의 판매가는 22억∼25억원. 보통 VIP들이 다녀가는 첫날, 대형 해외 작품이 먼저 팔려나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 거다. 그런데 프리즈의 이런 동향에 영향을 받은 건 엉뚱하게도 ‘키아프 서울’이다. 국내 갤러리가 내세운 ‘고가의 수작’이 프리즈로 옮겨가며 정작 키아프가 아닌 프리즈 곳간을 채워준 형국이라서다.
유영국의 ‘워크’(1971, 137×137㎝). ‘프리즈 서울 2026’에 참여한 국제갤러리에 걸렸다. 둘째 날에 22억∼25억원에 판매된 이 작품은 올해 키아프·프리즈를 통틀어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이 됐다. 한국을 방문한 북미 지역 미술관 이사회 멤버로 알려졌다(사진=국제갤러리).
‘한방’ 잭팟보다 ‘안정’ 택한 프리즈
한 해 중 가장 떠들썩하게 치러지는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 2026’과 ‘프리즈 서울 2026’이 폐막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전관을 뒤흔든 두 아트페어는 키아프가 6일까지 닷새간, 프리즈가 5일까지 나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키아프는 8만여 명, 프리즈는 7만여 명의 관람객을 맞았다. 양쪽 다 3년 연속 비슷한 수준이다.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들로만 꾸린 거고지안갤러리를 둘러보던 한 관람객이 그중 한 점인 ‘네메시스’(2007)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판매에서는 ‘결정적 한방’이 없었다. 해마다 한 점씩은 터져주던 수백억대 언저리 거래가 올해는 프리즈에서도 키아프에서도 없었단 얘기다. 올해 키아프리즈 통틀어 도드라진 특징은 유명 작가의 반복이다. 유독 ‘유영국’이 많이 보였다. 국제갤러리는 프리즈에서 판 1971년 작품 외에 키아프에서도 ‘워크’(1979)를 6억∼7억 2000만원에 판매했다. 또 가나아트는 프리즈에 ‘워크’(1980)와 키아프에 ‘워크’(1973)를, 페이스갤러리는 프리즈에 ‘워크’(1989)를 내걸어 컬렉터들의 마음을 바쁘게 했다. 서도호도 프리즈 곳곳에서 눈길을 끌었다. 리만머핀과 STPI에서 메인작가로 등장해 ‘실 드로잉’으로 알려진 크고 작은 평면작품들을 첫날 수천∼수억원대에 거래했다.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오가는 관람객들 사이에 페이스갤러리가 내건 유영국의 ‘워크’(1989)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STPI가 내건 서도호의 실 드로잉 ‘하운팅 홈’(2026) 앞에 한 관람객이 오래 머물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외에 프리즈에선 타데우스 로팍이 아드리안 게니의 ‘장례용 비석을 든 인물상’(2026)을 110만유로(약 17억 4000만원)에 판매해 첫날 최고가 작품으로 등극시켰고, 안토니 곰리의 철 조각 ‘홀드’(2024)도 75만파운드(약 13억 8000만원)에 팔았다. 글래드스톤은 키스 해링의 소품 회화 10점을 총 250만달러(약 34억원)에 거래했다. 화이트큐브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조각 ‘드 쿠닝의 손’(2019)을 80만유로(약 12억 5000만원), 박서보의 ‘묘법 no.221121’(2022)을 30만달러(약 4억 1000만원)에 판매했다.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타테우스로팍이 내건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거꾸로 회화 ‘그림자는 거기에 있지만, 당신은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2018). 관람객의 눈길·발길을 잡아둔 작품 중 하나다. 새 주인을 만난 건 부스 중앙에는 안토니 곰리의 철 조각 ‘홀드’(2024)다. 75만파운드(약 13억 8000만원)에 팔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화이트큐브에 나온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조각 ‘드 쿠닝의 손’(2019·왼쪽)은 80만유로(약 12억 5000만원)에 팔렸다. 두 관람객이 그 옆에 걸린 트레이시 에민의 ‘울타리 사이에 두고 키스하기’(2019)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탕컨템포퍼리갤러리는 우국원의 ‘노인과 바다’(2026), ‘피노키오의 모험’(2026) 등 3점을 1억원 중반대에, 김선우의 ‘북극성 아래서 항해’(2026) 등을 3000만∼3500만원에 거래했다. 하우저앤워스에선 조지 콘도의 대작 ‘파란색 대각선 추상화’(2023)가 350만달러(약 48억원)에 출품해 관심을 끌었으나 판매로는 연결되지 못했다. 대신 루이즈 부르주아의 청동조각 ‘펨므’(2005/2016)가 60만달러(약 8억원)에 팔렸다.
프리즈에 참가한 국내 갤러리들도 판매소식을 전했다. 갤러리현대는 김창열의 희귀작 ‘회귀 SNM93016’(1991)를 110만달러(약 15억원)에 판매했고, 조현화랑도 이배의 청동조각 7점을 5000만∼2억원대에 거래했다.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두 관람객이 탕컨템포러리갤러리에 걸린 우국원의 ‘피노키오의 모험’(2026)을 오래 지켜봤다. 작품은 첫날 1억원대에 팔렸다. 건너편으로 김선우의 ‘북극성 아래서 항해’(2026)가 보인다. 이 작품 역시 3000만원대에 일찌감치 판매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일행으로 보이는 관람객들이 국내 갤러리현대가 내놓은 김창열의 ‘회귀 SNM93016’(1991) 앞에 한참 머물렀다. 작품은 110만달러(약 15억원)에 팔렸다(사진=이영훈 기자).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조현화랑은 이배의 작품으로 솔로부스를 꾸렸다. 관람객들이 청동조각작품과 숯그림을 둘러보고 있다. 나흘간 조현화랑은 청동조각 7점을 5000만∼2억원대에 거래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키아프는 여느 해처럼 중진작가의 작품들이 성과를 냈다. 박은선 솔로부스로 꾸린 가나아트는 화강암 조각 ‘무한기둥’(2026)을 4억 6000만원에 거래하는 등 총 6점을 팔았고, 장-미셸 오토니엘의 조각·회화를 메인으로 꾸린 국제갤러리는 500만원대부터 1억 2000만원대까지 고르게 판매했다. 이외에도 아트사이드갤러리는 원로작가 김호득의 회화 2점을 각각 5000만원선에, 신진작가 권소진의 회화 6점을 200만∼800만원에 모두 판매하는 등 세대를 아우른 작가의 고른 판매를 보였다.
‘키아프 서울 2026’ 전경. 가나아트는 박은선의 작품으로 솔로부스를 꾸렸다. 이 중 화강암 조각 ‘무한기둥’(2026·왼쪽)을 4억 6000만원에 거래하는 등 총 6점을 팔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키아프 서울 2026’ 전경. 아트사이드갤러리에 걸린 원로작가 김호득의 대형 회화작품 ‘폭포’(2025) 앞에 두 관람객이 오래 머물렀다. 2.5m의 압도하는 수묵필치로 닷새간의 일정 내내 시선을 끈 작품은 1억원에 출품했으나 주인을 찾진 못했다(사진=이영훈 기자).
갤러리조은은 신진작가 성률의 150호 ‘클라우드’(2026)를 6500만원에 거래하는 등 출품 연작 모두를 컬렉터 손에 넘겼고 조원재, 권용래, 마야코 코바야시 등의 작품도 판매로 이어냈다. ‘키아프 하이라이트 10인’에 든 임현정을 앞세운 아뜰리에아키는 권능, 정성준, 정유미, 이미정 등의 작품이 고르게 팔려나갔다. 이 중 권능은 ‘어제와 영원의 여름’(2026, 4000만원) 등을 선두로 설치작 모두를 팔았다.
‘키아프 서울 2026’ 전경. 갤러리조은에 걸린 성률의 크고 작은 회회작품 앞으로 관람객이 끊이질 않았다. 안쪽으로 6500만원에 팔린 150호 ‘클라우드’(2026)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키아프 서울 2026’ 전경. 아뜰리에아키에 걸린 임현정의 작품을 한 관람객이 둘러보고 있다. ‘키아프 하이라이트 10인’에 든 임헌정의 작품은 ‘마음의 섬’(2018)을 앞세워 소품 시크릿 비치’(2026) 등까지 고르게 판매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같이 해도 따로 해도…걱정 줄지 않는 키아프
키아프리즈 5회째이자 첫 계약의 마지막 해였던 올해는 ‘한 지붕 마지막’으로 의미를 키웠다. 지난해 12월 ‘5년 재계약’을 확정해 기간을 연장했지만, 새 계약이 적용되는 내년부터 키아프리즈는 분리 개최된다. 공교롭게도 ‘코엑스 리뉴얼’이란 변수를 만난 탓인데 결국 두 아트페어는 ‘두 지붕’(키아프는 코엑스, 프리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에 나눠 여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일단 2027년, 2028년의 분리개최는 확정적. 이후 다시 합쳐질 순 있겠지만 장담은 또 할 수 없는 일이다. 가뜩이나 프리즈로 몰렸던 관람객의 발길이 그나마 더 줄지 않을까 키아프로선 마음이 편치 않다.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한 관람객이 오타파인아트에 니온 쿠사마 야요이의 ‘야요이-찬의 초상’(2014)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있다. 관람객의 눈길·발길이 끊이지 않은 작품 중 하나다(사진=이영훈 기자).
게다가 이미 이번 5회째부터 뒤흔들린 구도도 영 걸린다. 방향을 선회한 프리즈의 전략, ‘대거 들인 한국 갤러리’ ‘중저가 작품’ 등에 키아프는 또 한 번 길을 잃게 됐으니까. 지난해까지만 해도 프리즈 ‘고가 작품’의 대항마는 키아프 ‘중·저가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앞으로도 프리즈의 전략이 이렇게 이어진다면 키아프의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 양쪽에서 나올 때 컬렉터는 키아프보단 프리즈를 선택할 공산이 크단 얘기다. 지난 5년간 정체성·방향성을 고민하느라 버거웠던 키아프의 상황이 다음 5년 동안에도 녹록지 않을 듯하다.
‘프리즈 서울 2026’ 전경. 알민 레시 갤러리에 건 조지 콘도의 ‘핑크와 그린으로 그린 여성 인물상’(2025)도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125만~150만달러(약 17억∼20억원)에 출품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