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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연구비 0원 통보”…세계 최고 논문으로 돌아온 박제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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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기자I 2026.05.12 05:33:02

[만났습니다②]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IBS 부단장 시절 명확한 사유 없이 연구 중단 위기도
네이처 이어 ‘리뷰스 오브 모던 피직스’ 성과
“한국 과학, 숨은 영웅 숨 쉴 환경 필요”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 세계적 연구 그룹이었지만, 2020년에는 연구비가 ‘0원’이 되는 위기도 겪었습니다. 국내외 학자들의 회의적인 시선도 견뎌야 했습니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최근 서울대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원자 한 층 두께에서도 자성을 유지하는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 분야를 개척한 세계적 연구자다.

특히 그는 2016년 약 70년간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2차원 자성 현상을 세계 최초로 실험 입증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전 세계 연구진과 함께 해당 분야의 표준 지침서를 완성했고, 연구 성과는 미국물리학회 권위 학술지인 리뷰 오브 모던 피직스(Reviews of Modern Physics)에 게재됐다. 이 학술지는 특정 분야를 개척한 연구자에게만 논문을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연구자가 이름을 올린 사례도 故 이휘소 박사, 김진의 서울대 교수, 이주련 성균관대 교수 등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하지만 박제근 교수에게 돌아온 것은 풍족한 연구비가 아니라 연구 중단 위기였다. 박 교수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그룹리더와 부단장을 맡아 국제학술지 ‘네이처’ 등에 논문을 게재하는 등 성과를 냈다. 그러나 2020년 갑작스럽게 연구비 전액 삭감 통보를 받으며 연구가 사실상 멈출 상황에 놓였다.

박 교수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며 세계 유수 학술지에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IBS로부터 연구비 전액 삭감을 통보받았다”며 “무엇보다 왜 연구비를 끊는지 이유조차 설명받지 못했던 점이 가장 답답했다”고 말했다.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로운 연구 과제를 준비했다고 했다.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과제를 수주하며 가까스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다만 연구 공백의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박 교수는 “최근 물리학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리뷰스 오브 모던 피직스(Reviews of Modern Physics)’에 논문을 게재하는 등 성과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연구가 흔들리는 사이 미국과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이 빠르게 추격해 오면서 격차가 줄어든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연구 초기에는 국내외 학계의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연구를 만류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해외에서는 “조심하라”는 반응이 이어졌고, 국내에서는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연구를 방해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 같은 기초과학 강국도 성공하지 못한 연구를 한국에서 할 수 있겠느냐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16년 실험적 입증에 성공한 뒤 국제 학계의 평가는 달라졌다. 이후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해당 분야에서 한국 연구진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박 교수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 분야에만 예산을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과학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이나 양자 기술처럼 전략적 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지원해야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기초 연구와 ‘최초 연구’를 함께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970년대식 추격형 전략은 지금 시대에는 한계가 있다”며 “AI와 양자처럼 기반 확보가 시급한 분야에는 집중 투자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한국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도 함께 지원하는 균형 잡힌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단기간 대규모 예산을 몰아주는 방식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연구비는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도하면 성과가 떨어질 수도 있다”며 “적정 수준의 연구비를 장기적으로 지원해 연구자들이 꾸준히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 학·석사 △영국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 박사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박사후연구원 △영국 버크벡 컬리지 연구교수 △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현 서울대 양자물질연구단장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한국물리학회 학술상 △한국과학상 △포스코 청암과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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