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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4번의 대통령선거에서 주요 주자로 이름을 올렸고 제3당 당대표까지 맡았다. 대통령을 제외한 정치인들 중 이보다 더 화려한 이는 드물다. 화려했던 시절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을까, 안철수는 점차 잊혀지는 정치인 같다.
그러나 ‘정치인’ 안철수 이전의 ‘인간’ 안철수는 다르다. 일찌기 초등학생의 교양서적에 등장할 정도로 주목 받았다. 그의 일대기는 한때 청년들의 멘토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방송 하나, 그리고 떠오른 국민 멘토
2009년 6월 17일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특이한 게스트가 출연했다. V3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안철수였다. 당시 그의 공식 직함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좌교수였다.
참,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때 MBC 프로그램의 위상을 들여다보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이었고 유튜브도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동영상 플랫폼은 아니었다. ‘지상파 권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MBC 등 방송사의 영향력은 컸다. 종합편성채널도 없던 시기였다.
무릎팍도사는 이런 MBC에 특급 MC 강호동이 나와서 게스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콘셉트의 토크쇼였다. 누가 나와도 한동안 유명세를 탈 수밖에 없는데, 안철수는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훗날 ‘안철수 열풍’으로 이어지는 대중적 인지도의 출발점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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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에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료로 나눠줬고, 의대를 떠나 회사를 차렸다. 10년 동안 최고경영자(CEO)로 일했고 회사가 자리를 잡자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유학길에 올랐다가 돌아와 KAIST 교수가 됐다. 이때 그의 나이 47살이었다.
방송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효율성으로만 따지면 나는 실패한 인생이다.” 의학을 공부해놓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개발자의 삶을 사는 듯했는데 CEO로 생활하다가 다시 교수로 돌아왔다는 의미다. ‘한 우물을 파라’는 어르신들의 조언을 기준으로 본다면 잔소리감 1위다.
자조적이면서 약간은 어눌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의 말에 시청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날 황금어장 시청률은 TNS미디어코리아 기준 16.6%였다. 이어 방영될 예정이었던 ‘라디오스타’는 다음 주로 미뤄졌다. TVian이 그해 연말 실시한 ‘무릎팍도사 최고의 게스트 조사’에서 안철수는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미국 진출 경험을 진하게 풀어냈던 원더걸스였다.
미루어 짐작컨대 이때 우리 국민들은 ‘위로를 줄 인물’을 바랐던 게 아닐까 싶다. 2009년 6월은 직전 해(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우리 국민들에게 미치고 있던 때였다. 경기 상황도, 국제 분위기도, 정치 구도도 혼란스러웠던 때였다.
취미였던 백신 개발
안철수가 태어난 해는 1962년이었다.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고 1991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의대 조교를 거쳐 단국대 의대 전임강사와 의예과 학과장을 맡았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흔히 안철수에 대해 ‘의사 출신 사업가’라고 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보면 ‘의학 연구자’라고 보는 게 맞다. 원래는 컴퓨터와 크게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도 처음에는 공학적 진로라기보다는 의학 연구와 병행한 취미에 가까웠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의대 본과 1학년이던 1982년에 하숙집 룸메이트가 구입한 애플Ⅱ+(애플2플러스)를 보면서 개인용 컴퓨터를 접했다고 한다. 이듬해 자신도 컴퓨터를 마련했고 책을 보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취미 생활에 머물 줄 알았던 컴퓨터 공부가 1988년 대전기를 맞았다. 당시 컴퓨터 관련 소식지를 받아보던 중 해외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것이 등장했다는 내용을 접했다. 호기심이 생겨 자신이 갖고 있던 디스켓을 조사했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디스켓을 발견했다. ‘브레인’이었다. 초기 IBM PC 환경에서 널리 확산된 대표적인 바이러스였다. 밤새워 코드를 분석했고 바이러스의 작동 원리를 이해한 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올림픽 개막 석 달을 앞둔 1988년 6월 프로그램 하나가 만들어졌다. 안철수는 의학도답게 이름을 백신(Vaccine)이라고 붙였다. 영어권에서는 보통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이라고 부르지만 한국에서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흔히 ‘백신’이라고 부르는 관행은 안철수의 프로그램에서 비롯됐다.
안철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치료 기능을 추가하면서 백신Ⅱ, 백신Ⅱ플러스 등으로 발전시켰다. 1991년 대대적인 개편을 거치며 백신Ⅲ, 즉 V3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안철수가 사업적 목적으로 백신을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취미생활의 연장이자 사회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백신을 무료 배포했다. ‘일반 개인의 공익봉사’로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의사가 약을 지어 배포한다’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실제 안철수 본인은 의대 시절 의료봉사를 했고, 부친 안영모씨도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무료로 진료한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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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PC 보급이 늘면서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순수한 선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가면 연구와 학생 지도를 본격적으로 해야 했다. 이때가 1994년 무렵이었다.
안철수는 의학 연구를 하기보다 백신 개발에 매진하기로 했다. 훌륭한 의사는 자기 말고도 많지만, 컴퓨터 바이러스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일은 국내에서 자신 외에는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 어쩌면 실리콘밸리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세상을 바꾸고 싶다’라는 창업가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초기에는 자기 회사를 만들기보다는 비영리 연구조직으로 운영할 방법을 찾았다. 정부 기관과 기업에 제안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정보보안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희박했다.
손을 내민 곳은 이찬진이 CEO로 있던 한글과컴퓨터였다. 한컴이 판매와 마케팅을 맡고 안철수가 기술개발과 운영을 맡기로 했다. 1995년 3월 15일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의 출발이었다. 당시 직원은 3명이었다.
어렵게 시작한 회사였지만 환경은 척박했다. 한컴이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법복제’가 횡행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백신은 무료로 배포됐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공짜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수고에 비해 보상이 적은 구조였다.
1997년 한컴이 보유하던 지분 일부를 삼성SDS에 넘기면서 안철수연구소는 독자 영업과 마케팅을 강화하며 홀로서기에 나섰다. 같은 해 미국 보안기업 맥아피가 안철수연구소 인수를 위해 1000만달러를 제안했지만 안철수는 이를 거절했다고 훗날 밝혔다. 국내 정보보안 기술을 유지하면서 회사를 계속해서 운영하려는 판단이었다.
시대적 숙명이었을까. 이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1999년 ‘체르노빌 바이러스’가 큰 피해를 내면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다. 정보보안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컴퓨터 보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안철수연구소는 급성장했고 2001년 국내 보안업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2004년 안철수연구소의 매출은 315억원, 직원 수 300여명 규모의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때 영업이익은 102억원, 영업이익률은 32.5%였다. 안철수의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민 멘토이자 유력 대선주자로
안철수는 회사 창립 10주년을 맞아 CEO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회사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성장세였다. 회사도, 그의 이력도 ‘CEO 퇴임’을 외치기에는 ‘의외다’, ‘이르다’라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보면 안철수는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 스스로 움직이는 회사’를 원했던 것 같다. 창업자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회사가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안철수는 2008년 돌아왔다. 그해 5월 KAIST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기술경영 분야 석좌교수였다. 20년 전 의대 강의실에서 전기생리학을 가르쳤다면, 그해부터는 기업가정신과 벤처 창업을 가르쳤다.
2009년 MBC 방송은 이런 그의 삶의 이력을 대중에게 다시 보여줬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 지쳐 있던 국민들은 그를 환영했다. 이후 그는 그 시대 청년들의 멘토로 떠올랐다. 의사 출신 벤처사업가이자 교수였던 안철수는 2011년에 이르러 차기 대통령감으로까지 언급되는 인물이 됐다.
(정치인 안철수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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