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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외국인 셰어하우스 장소를 찾으러 들렀다가 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게스트하우스만으로 끝내기는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 익동다방이었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골목에 사람 몇 명 정도만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획한 것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됐다”며 “큰 대로와 이어지는 모세혈관 같은 골목을 하나하나 활성화했던 역할이 ‘가치 있는 일이었구나’ 느낀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2017년에는 폐가가 넘치던 대전 소제동 도시재생을 이끌었다. 이곳은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이후 철도 관련 종사자들이 모여 살던 관사촌이었다. 이후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슬럼화된 도심으로 남았다. 박 대표는 소제동이 지닌 이런 서사와 분위기에 집중했다. 낡은 세탁소와 이용원, 철물점, 슈퍼 등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장소를 사들여 개성 있는 식당과 카페로 변모시켰다. 현재 소제동 관사촌은 연간 60여만명이 찾는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박 대표가 처음부터 사명감으로 도시재생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공간’과 무관한 커리어의 충남 공주 출신 시골 처자였다. 경영학을 전공한 후 방송국 일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후 직장 생활을 거치며 부동산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이는 상상과 기획을 즐기는 그의 성격과 맞아떨어지며 ‘공간 기획’이라는 적성을 발견했다. 부모님께 1000만원의 보증금을 빌려 마련한 원룸에 게스트하우스 같은 셰어하우스를 운영했던 것이 사업의 첫 시작이었다.
박 대표는 “평소 안 쓰던 물건을 찾는 일을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발견’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라며 “낯선 골목과 아무도 안 가본 맛집을 발굴하는 것도 이런 천성에서 비롯했던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경험 없이 익선동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을 당시 힘들기도 했지만 동료들과 구상하고 구체화하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며 “익선동과 소제동의 도시재생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화성 소셜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성시 사업 역시 즐기면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