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일본 여당인 자민당과 외교부-외교조사회 합동 회의에서는 주한일본대사를 귀국시키고 한국인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등 강경책을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취업비자 제한 등 경제적인 제재를 요구하는 강경론이 이어졌다.
같은날 일본 히타치조선은 서울고법으로부터 손해배상 판결(원고 일부 승소)을 받은 직후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히타치조선은 “한국 법원의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과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 그리고 당사(히타치조선) 주장에 반하는 것”이라며 “유감이다”고 밝혔다. 또 “일본 정부와 연락을 취하고 상고를 포함한 적절한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이후 일본 당국자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정부는 외교채널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일본측에 역사적인 책임 의식을 갖고 신중한 대응을 해줄 것을 촉구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나 일본 언론들은 문 대통령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강제징용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일본측이 날선 맞대응으로 일관하면서 국내 여론은 더 악화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더 좁히는 형국이다. 일본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우리 정부에 외교적 협의를 요청한 상태지만 현재로서는 양국이 마주 앉는다해도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 당국자는 “정말 어려운 문제다. 피해자들의 입장, 일본과의 외교적인 관계, 다른 과거사 문제와의 연계 가능성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면서 “(배상금 지급을 위한)기금 조성 방안 같은 경우도 피해자들 안에서도 기금 성격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일본측이 제안한 양자 협의 요청을 우리 정부가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나 기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도 지난 2011년 우리 정부가 위안부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협의를 요청했으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응하지 않았다.
일본의 협의 요청이 차후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 국제사법재판소(ICJ)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로서는 명확한 대응방안을 정하기 전에는 ‘무응답’으로 일관할 공산이 크다. 일본이 국제법적인 대응을 강조하고 나선 데는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여론전’을 펼치는 한편 시간을 끌기 위한 속내가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서는 일본측이 제시한 강제징용 문제 외에 위안부 등 기존 우리 정부의 요청사항을 포함한 외교적 협의를 진행하는 것을 역(逆)제안할 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금처럼 각자의 입장만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기 보단 양측이 일단 만나서 실무적인 협의라도 진행하면서 의견을 맞춰 나가는 것이 낫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