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여기로' 기차여행 이벤트
4만 9000원에 모든 비용 포함돼 ‘인기’
정선 고한읍, 마을호텔로 변신한 18번가
하이원 케이블카에서 백두대간 가을을
삼탄아트마인, 예술과 만난 폐광촌 역사
| ‘마을호텔 18번가’의 골목길에서 사방치기를 즐기는 어린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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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제가 무슨 숫자를 생각했을까요? 자, 지금부터 제 마음을 맞추는 게임을 시작합니다!”
왁자지껄한 새마을호 열차 안. 일반 기차에서는 볼 수 없는 이벤트가 열렸다. 가이드가 노트에 숫자를 적으면, 차량 내 승객들이 합심해 꼬리물기 방식으로 추측하는 게임부터 가위바위보, 문자 빨리 보내기 등이 이어졌다. 소란스럽지만 불평하는 이는 없다. “객실 내에서는 다른 이를 배려해 조용히 해달라”는 안내 방송도 이날엔 나오지 않았다.
◇단돈 4만 9000원에 누리는 기차여행 ‘여기로’
| 기차여행 프로그램 ‘가을엔 여기로’ 행사의 경품 추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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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내내 인기를 끈 당일 기차여행 프로그램 ‘여기로’가 가을을 맞아 다시 시작됐다. 지난 3월과 6월에 이어 올해 세 번째다. 국내 여행캠페인 ‘여기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노랑풍선이 함께 협업한 기획여행 프로그램이다. 지난달에 ‘여행가는 가을’ 홈페이지에서 참가 신청을 받았고, 총 2000명의 여행객을 추첨으로 선정했다. 강원 정선 여행 상품의 경우 정상가는 약 18만원 상당이지만 선정자는 성인 1인당 4만 9000원만 내면 그만이다. 교통비, 식사비, 관광지 입장료가 모두 포함된 ‘대박 여행 상품’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응모자가 2만명 넘게 몰렸고 약 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선정된 참가자들은 24일까지 총 8회에 걸쳐 전국 24개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강원도 정선·태백·영월 여행의 경우 미성년자 2명 이상의 다자녀 가구를 대상으로만 신청을 받았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참가자는 “지인 4명과 함께 신청했는데 2명만 당첨됐다”면서 “예쁘다는 소문에 정선을 와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아이들과 함께 여행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 ‘마을호텔 18번가’의 포토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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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0명이 참가한 정선 여행의 첫 번째 방문지는 강원 정선군 고한읍의 ‘마을호텔 18번가’였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간 듯한 파스텔톤 분위기로 가득하다. 마을호텔 18번가는 고한18리 주민이 합심해서 마을 전체를 호텔처럼 운영하는 곳이다. 마을 내 민박집이 호텔 객실 역할을 맡고, 골목길은 호텔 로비, 음식점은 레스토랑이 되는 식이다. 마을 곳곳의 카페, 이발소, 세탁소, 잡화점 등이 호텔 편의시설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져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 호텔이 수직적으로 닫힌 구조라면 이곳은 모두에게 열린 수평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 ‘마을호텔 18번가’의 골목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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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도시에서 보기 힘든 옛 동네의 매력에 푹 빠진 듯한 모습이다. 흔히 땅따먹기라고 부르는 사방치기를 즐기거나, 벽에 장식된 LED 꽃장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술래잡기도 하며 낯선 동네를 앞마당처럼 누린다.
마을호텔 18번가가 있는 고한읍은 과거 석탄 산업으로 흥했던 곳. 탄광 산업의 쇠퇴와 함께 사람들이 떠나고 빈집이 늘어나면서 소멸 위기에 몰렸다. 썰렁했던 지역은 2018년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을 상가 전체를 호텔 부대시설처럼 쓰겠다는 아이디어를 실행해 낡은 벽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하고, 쓰레기가 뒹굴던 골목길은 꽃으로 채웠다. 폐광촌에 동화같은 문화적인 생기를 불어넣으면서 유명세를 탄 마을호텔 18번가는 이제는 주요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탄광에 핀 예술의 꽃의 큰 울림
| 하이원 운탄고도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가을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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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의 백두대간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특별한 체험. 점심 이후 향한 곳은 ‘하이원 운탄고도 케이블카’였다.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하이원 팰리스 호텔을 출발해 해발 1340m에 있는 하이원탑까지 운행되는 지역의 명물이다. 이동식 전망대 역할을 하는 케이블카는 황금색, 오렌지색, 붉은색이 섞인 팔레트처럼 변한 인근 산 주변 전경을 보여주며 가을 여행의 진수를 선사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붉은 단풍으로 물든 산을 본 일행들은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한 관람객은 “그동안 날이 워낙 더워서 가을이 온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단풍을 보니 정말 장관”이라고 말했다.
| 체험형 동물원 ‘구름아래 동물농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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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착하면 지난 7월 말에 개장한 체험형 동물원 ‘구름 아래 동물농장’이 보인다. 하계 성수기 기간에 6만여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인기를 얻은 신규 시설이다. 울타리 속 양과 돼지를 본 아이들은 연신 손을 내밀고 근처에 있는 풀을 뜯어 양에게 먹이며 교감하느라 바쁘다. 단풍에 물든 산이 불타오르는 듯 하지만 아이들은 자연의 변화보다 동물에 더 관심을 보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 폐광의 흔적을 보존한 문화예술공간 ‘삼탄아트마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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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1980년대만 해도 강원도 정선은 석탄산업의 활황으로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1964년부터 2001년까지 운영된 옛 삼척탄좌 광산 시설에서는 전성기에 3000여 명의 광부들이 연간 100만 톤 이상의 석탄을 채굴했다.
| 삼탄아트마인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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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망성쇠의 명암을 담은 삼척탄좌는 폐광 이후 버려졌다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2013년 문화예술공간 ‘삼탄아트마인’으로 재탄생됐다. 이색 명소로 입소문을 탄 삼탄아트마인은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지금은 정선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폐광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문화의 손길이 맞닿아 자아내는 오묘한 분위기가 이곳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과거 기계를 수리하던 공간은 레스토랑으로, 지하갱도에 공기를 넣어 광부들을 숨 쉬게 했던 중앙압축기실은 원시미술관으로, 광부들의 목욕물을 덥히던 보일러실은 실내공연장으로 바뀌었다.
| 삼탄아트마인의 생태체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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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방문객들은 내부 시설 관람과 함께 ‘보물찾기’ 게임을 즐겼다. 삼탄아트마인 광장 곳곳에 보물 캡슐을 찾는 아이들이 활기찬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지켜보는 이들에게 무척이나 큰 울림을 선사했다.
‘여기로’ 행사의 올해 일정은 종료되지만, 정부는 내년에 같은 행사의 진행을 검토할 예정이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이번 ‘여기로’ 이벤트를 통해 국내 여행을 더 친근하게 느끼고 다른 지인이나 가족과 함께하는 재방문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삼탄아트마인에 방문한 기차여행 프로그램 ‘여기로’의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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