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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6촌 어찌 다 압니까”…제도 공백에 ‘고발 딜레마’ 빠진 공정위

김상윤 기자I 2018.10.21 16:14:59

대기업집단 지정 및 주식소유현황 제재 논란
과거 '고의성 없으면' 경고했지만..근거 없어
'대기업 유착' 혐의로 검찰 수사 나서는데…
무조건 고발해야 하나…법 적용 딜레마 빠져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위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지정 관련한 조사에서 ‘고발 딜레마’에 빠졌다. 그간 법 위반 정도에 따라 ‘경고’ 처분도 내렸지만, 법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판단한다고 검찰이 어깃장을 놓자 무조건 고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제도 개편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경미한 법 위반에도 강한 제재만 받게 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과 관련해 일부 대기업에서 총수일가의 주식소유현황을 잘못 신고한 사실을 적발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주식소유현황 신고와 관련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 “조사 사항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딥단의 경우 총수의 6촌 이내 친족(인척은 4촌 이내)이 운영하는 회사의 주주의 주식소유현황을 신고하지 않거나 허위의 보고를 할 경우 총수를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공정거래법 68조에 규정돼 있다. 지주회사 설립 전환 신고나 지주회사 사업내용 보고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이는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전속고발권’ 효력이 미치지 않는 조항으로, 행정처벌이 아닌 형벌 성격이 강한 처벌 규정이다. 재벌의 무리한 확장 및 사익편취를 막기 위해 엄격하게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69조 적용 대상행위 조치 현황(2010년1월~2018년 8월말)
68조4호는 2017년4월 법개정으로 67조7호로 변경. 2년이하 징역또는 1억5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 (자료=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제는 공정위가 그간 68조 문제를 ‘행정처분’처럼 운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별도로 고발보다는 ‘경고’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테면 대기업 지정자료 허위 제출과 관련해 LG는 동일인 계열사 19개사를 17년간 미신고하고 상호출자금지도 위반했지만 2013년 9월 경고 처분만 받았다. 효성 역시 총수가 계열회사 1개사를 20년간 누락했지만 경고 처분을 받았다. 당시 공정위는 자료 누락이 고의성이 있다고 볼 수 없고, 단순 실수에 불과하다고 ‘경고’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공정위-대기업 유착’ 문제로 보고 30여개 주요 대기업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검찰 수사에 더해 국회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공정위는 난처한 상황이다. 경미한 법 위반 사항을 발견했지만, 과거 잣대를 적용할 경우 ‘경고’를 줄 수 있는데도 무조건 고발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가족간 분쟁으로 총수 6촌이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상당하다”, “대기업집단이 된 지 얼마되지 않아 실수로 자료를 누락한 경우도 있다”, “나중에 잘못 신고된 것을 알고 다시 신고했지만 고발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토로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직원의 단순 실수로도 무조건 총수가 고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 제도 개선이 시급하지만 공정위는 검찰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제도 개선 여부에 대해 검토를 했지만, 검찰이 과거 법적용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어 기소여부를 봐야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위가 고발과 경고에 대한 잣대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경고 제도 운영을 위한 법적 근거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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