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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한공주’에서 주인공인 여고생 한공주가 “지인의 아들인데 미안하다며 합의를 부탁한다”고 서류를 내미는 경찰관에게 한 대사 중 한 구절이다.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와 재혼해 살고 있는 어머니들 둔 한공주는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지만 가해자 부모 등의 합의 협박 등에 숨어 산다. 한공주는 수영을 배우고 친구들과 사귀며 학교 생활을 적응해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세상의 삐딱한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04년에 44명의 고교생이 약 1년간 여중생 1명을 집단적으로 성폭행한 게 주된 내용이다. 일부 가해자와 가해자의 여자친구는 피해 여중생이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촬영해 협박수단으로 이용했다.
가해자들은 경찰에 모두 검거됐다. 하지만 미성년자와 초범이라는 이유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은 가해자는 단 한 명도 없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최근 가해자 중 한 명이 불법 고리사채업을 하다가 구속돼 징역형을 살게 됐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면서 이 사건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소년범 재범률 35.2%…정부 “보호처분 활성화가 대안될 수도”
이 사건이 발생한 지 14년이 지난 지금도 강간 등 청소년 흉악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강간과 폭력 등 흉악범죄를 일삼는 만 14∼18세의 소년범들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강간 소년범은 지난 2015년 1830명이 검거된 이후 3년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933명이 검거됐다. 폭력 소년범은 지난 2014년 2만 82명이 검거된 이후 지난해에는 2만 1996명이 검거돼 4년 연속 검거인원이 증가했다. 소년범의 전체 재범률(흉악범죄 등 포함)은 35.2%에 달했다. 소년범 3명 중 1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년법을 개정해 소년법 적용에 대한 나이(형사 미성년자)를 낮추고 처벌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년법 개정과 관련해 950개(10월 26일 기준)가 넘는 청원글이 게시돼있다.
특히 지난달 19일 ‘인천 여중생 사망 사건’을 계기로 소년법을 개정해 형사 미성년자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청원이 이달 14일 추천 인원 20만명(청와대 답변 기준)을 넘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 2월 한 여중생이 남학생 2명에게 성폭행당하고 또래 학생들에게 집단 따돌림당한 뒤 같은 해 7월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한 내용이다.
가해자들은 경찰조사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강간)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해자들이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에 해당해 법원 소년부로 송치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간 청와대는 두 차례에 걸쳐 소년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먼저 지난해 3월 인천시 연수구에서 아파트 단지에 사는 8세 초등생을 자기 집으로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에 대한 국민청원에 답변했다. 17세인 주범이 소년법 적용 대상자여서 공범보다도 가벼운 형을 선고받자 소년법을 개정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추천 인원수도 39만 6000여명으로 답변 기준을 충족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영상물을 통해 “청소년이라도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고 그 청소년들을 엄벌하라는 국민의 요청은 정당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이 문제를 푸는데 형사 미성년자 나이를 한 칸 또는 두 칸으로 낮추면 된다는 건 착오라고 생각한다. 보호처분을 활성화하는 게 대안일 것 같다”고 밝혔다. 보호처분이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게 집행하는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 10가지 처분을 말한다.
올해 3월 대구에서 여중생이 또래 청소년 7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사진까지 찍힌 ‘대구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발생해 소년법 개정 국민청원 추천 인원이 답변 기준을 넘어서자 청와대가 다시 한번 입장을 밝혔다.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영상물을 통해 “형사 미성년자인 만 14세 기준은 지난 1953년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 만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했다”며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26개나 발의돼 있어 관련 법 개정에 협력할 계획”이라며 이전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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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소년법 개정에 앞서 소년범들을 교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화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우선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승현 SOGI법정책연구회 박사는 “범죄를 저질러 시설에 구금되는 학생들은 비행을 다시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시설 안에서 범죄를 학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형사 처벌에 앞서 소년범들이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하거나 부모에게도 교육프로그램을 강제로 받게 하는 교화시스템을 만들어 올바른 방향으로 양육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탁경국 법무법인공존 변호사는 “최근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소년법을 개정해 형사 미성년자 나이를 만 13세까지 낮추겠다고 한 점에 대해 찬성”이라며 “다만 소년범들을 무조건 교도소에 보내는 식의 교화로는 소년범죄를 근절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가 교화시스템 마련 등으로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이라며 “참 어려운 얘기지만 가장 근본적인 대책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