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 신경써” 말에 수치심 느꼈는데…法 “성희롱 아냐”, 왜

강소영 기자I 2024.11.26 08:43:52

출장길서 동료 직원과 사적인 대화
결혼과 임신 고민에 “피임 조심해라”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 느껴” 징계까지
법원은 “직장 내 성희롱 아냐” 판단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직장 동료에게 남자친구와 피임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 징계를 받은 사례에 대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뉴시스)
25일 광주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양영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직원 A씨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상대로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한 ‘경고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문화전당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A씨에게 지난해 5월 내린 ‘불문 경고’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 이에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 비용 역시 모두 부담하라고 주문했다.

앞서 2022년 4월 A씨는 동료 직원 B씨와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는 차 안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게 됐다. 당시 B씨는 “결혼을 늦추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가정과 아이를 빨리 꾸리고 싶어 한다”고 결혼과 임신에 대한 고민을 상담했다.

그러자 A씨는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달라”며 “남자친구랑 피임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런 애들이 임신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내부 고충심의위원회에는 직장 내 성희롱 신고가 접수됐고 A씨에 대해 ‘견책’ 징계 의결이 내려졌다. 이에 A씨가 불복하면서 불문 경고로 감경됐고 이번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 “발언이 다소 부적절하고 어느 정도 불쾌감을 느끼게 할 수 있어 보이기는 하나 ‘피임’ 관련 모든 발언이 성적 언동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결혼·출산·육아·휴직 등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털어놓은 데 대해 A씨가 조언이나 충고하기 위한 의도에서 발언했다고 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에 전당 측은 “‘피임’이라는 단어는 가장 내밀한 사적 영역인 성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고 피해자가 듣기에 매우 불쾌할 수 있는 발언”이라며 “피해자는 ‘실제 성적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했다”고 항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도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언행이 있었던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등을 막론하고 그 언행 자체가 항상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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