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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1인당 229만원 쓰는 中왕서방.."한국産 딩하오"

김미경 기자I 2013.09.17 11:44:27

유통가 손님맞이 분주..요우커 유치전 치열
"이왕이면 금색"..단품보다 '기획세트' 좋아해
명동 화장품매장 판매원 외국인이 70%
'시장은 한숨'..구경꾼 많은데 텅빈 장바구니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장영은 기자] 지난 15일 찾은 명동 일대는 명절 선물을 사가는 한국인 대신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몰려 북적거렸다. 대부분 양손에 쇼핑백을 가득 들고 있었다. 중국 관광객 왕여린(32)씨는 “이곳에서만 75만원어치의 보습제·비비크림 등을 샀다”며 “품질이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엔저 장기화로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감소한 가운데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중국관광객을 손님으로 맞이하기 위한 입간판들이 눈에 띈다. (사진=뉴시스)
중국의 중추절(19~21일)과 국경절 연휴(10월1~7일)를 앞두고 국내 유통가가 ‘왕서방’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롯데백화점은 소공동 본점에서 한복을 입은 통역사원이 층별로 일대일 맞춤 통역 쇼핑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키로 했다. 기존 20여 명이던 통역요원을 2배로 늘려 배치할 예정이다. 국경절 연휴인 다음 달 1~7일엔 중국인 선호 브랜드 약 100개 인기 상품을 최대 50% 할인하고 사은품도 준다.

현대백화점은 이 기간 동안 방한 중국인 중 SK텔레콤 로밍서비스 이용 고객에게 할인 쿠폰북을 증정한다. 김보화 현대백화점 해외마케팅 담당 과장은 “젊은 요우커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맞춰 문화행사 및 이색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롯데면세점은 이번 국경절 대목을 놓칠세라 지난 8월부터 업계 최초로 골드바 판매에 나섰다. 금 구매를 좋아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또 중국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게스트하우스에 홍보물을 배포하는 등 중국 여행사이트 제휴를 강화하고 밀착영업에 돌입했다.

◇왕서방 잘 팔리는 물건 봤더니..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역시 한국산 화장품이다. 불과 4~5년전만 해도 로레알, 에스티로더 등의 명품을 선호했다면 설화수·라네즈부터 더페이스샵·잇츠스킨·미샤 등 저렴한 토종 한국산 화장품들을 사재기하고 있다.

잇츠스킨 ‘프레스티지 끄렘 데스카르고’
특히 ‘단품’보다 ‘세트상품’이, 금색(金色)의 용기 제품이 잘 팔려나갔다.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금색 용기에 담긴 잇츠스킨 ‘프레스티지 끄렘 데스카르고’ 제품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명 ‘달팽이크림’으로 불리며 지난해 말 기준 누적 판매량이 100만개를 넘어섰다.

2009년 출시 첫해에는 3만개 판매에 그쳤으나 2010년 16만개, 2011년 29만개, 2012년 54만개나 판매됐다. 정해영 잇츠스킨 팀장은 “지난 중국 노동절에도 1일 평균 1230개씩 팔려나갔다”고 귀띔했다.

명동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많아지면서 이 일대 화장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중국인 직원도 덩달아 늘었다.

명동에 5개 이상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더페이스샵·잇츠스킨·네이처리퍼블릭 등 주요 브랜드 판매원 가운데 외국 출신 비율은 평균 60~70%에 이른다. 더페이스샵은 명동이나 숭례문 등 관광 상권 일대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 가운데 60%가 중국 출신이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판매원이 70%, 나머지 30%가 일본인이다.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명동은 화장품 업체의 격전지가 된 지 오래다. 특히 2012년 6월 기준(소상공인진흥원 자료) 27개에 불과하던 화장품 매장은 올 6월 75개로 무려 3배 가까이 늘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화장품·시계·MCM·정관장이 중국인들에게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이라면서 “동양인 피부에 잘 맞으면서도 가격은 유럽의 명품 화장품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한류 스타들이 애용하는 화장품으로 알려져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는 김, 마켓오 과자를 찾는 중국인이 많았다. 베이징에서 온 난시천(23)은 “중국에서 한국 예능프로그램이 인기인데 요즘에는 ‘일밤-아빠! 어디 가?’를 즐겨 본다”며 “기념품으로 윤후가 맛있게 먹었던 라면을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롯데면세점 중국인 관광객 쇼핑리스트 순위(자료=롯데면세점)
자료=롯데마트
◇전통시장 한숨..구경꾼 많은데 빈 장바구니

반면 전통시장은 이번 명절에도 팍팍한 인심을 체험하고 있다. 대부분 상인들은 “젊은 새댁들은 대형마트로 가버려 대목경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재래시장이 어려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 추석에는 특히나 손님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

한가위를 4일 앞둔 15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이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지갑을 여는 손님 대신 먹자 골목을 찾거나 사진을 찍는 구경꾼들이 전부다. (사진=뉴시스)
이날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장바구니를 손에 든 고객들 사이에 먹자 골목을 찾거나 재래시장 사진을 찍는 구경꾼들이 섞여 있었을 뿐 정작 물건 값을 흥정하는 손님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과일과 생선, 건어물 등을 파는 일부 상인들은 손을 놓고 있었다. 상인들은 “물가는 지난해와 비슷한데 손님은 많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23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건어물상회 박재완(54)씨는 “추석을 코 앞에 두고 사람은 많이 늘었지만 지난해에 비해 손님 수가 딱 절반 수준”이라며 “워낙 경기가 안 좋으니까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만 많다”고 귀띔했다.

남대문 시장도 사정은 비슷해 보였다. 남대문 시장에서 인삼 가게를 하는 50대 후반 이모씨는 “중국인들은 오더라도 구경만 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주로 인삼이나 김 같은 상품에 관심을 보이고 근처 가볼만한 곳이나 맛집을 묻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장 매출액의 30%를 차지하는 재래시장 상품권의 이용률이 크게 낮아졌다.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올 1~8월 온누리상품권 누적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의 1689억700만원보다 19.3% 줄어든 1363억8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일부 상인은 주말 손님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추석 연휴 직전의 막판 장보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엔저 현상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자 서울 중구 명동 일부 환전소들은 중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환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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