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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대중과 학계, 언론계는 물론 선거를 눈 앞에 둔 집권 여당에게도 뭇매를 맞은 이 보고서는 곧장 폐기 수순을 밟았다. 너무 먼 미래를 내다 본 경제 전망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재원 대책 모두 공허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비전 2030’은 확고한 철학을 가진 재정 수장과 경제정책 총괄 조정부처로부터 분리된 기획예산 전담 부처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 예로 기억되고 있다.
최근 이혜훈 기획처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갑질·폭언·투기 ‘3종 세트’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의혹들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이 후보자에게 정작 물어야 하고, 그에게서 답을 들어야 하는 본질적인 질문은 뒷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나라가 기획재정부의 나라인가’라는 말처럼 공룡부처였던 기재부의 힘을 빼고 기능과 권한을 분산하는데 성공했지만, ‘균형적 예산 편성과 배분, 중장기 재정전략기능을 강화한다’는 기획처 신설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 후보자가 과연 적임자인지, 또 그럴 자질을 갖춘 인물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이 후보자는 지난 6일 비공개로 계획했던 재정전문가 간담회에서 “재정이 필요한 시점에 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소신이며, 꼭 필요한 부분에 스마트한 맞춤형 지원을 하는 똑똑한 재정을 하자는 게 평생 지론”이라는 입장을 자연스럽게 공개했다. 다만 이는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 맞춘 것이고, 현판식에서 “기획처의 존재 이유를 보여 달라”던 김민석 국무총리의 주문에 대한 화답일뿐이다.
이 후보자가 경제학자로서 어떤 학문적, 정책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적이 없다. 보수정당의 경제통이었으니 시장중심주의, 작은 정부, 재정균형 등을 중시했을 것이라 미뤄 짐작할 뿐. 다만 ‘일관된 소신’이나 ‘평생 지론’이라며 오히려 적극적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 만큼, 그가 균형적 예산 편성이라는 기획처 신설 목적을 충족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자신이 속한 정부여당도 불편하게 한 ‘비전 2030’을 설계한 변양균처럼, 진영을 넘어선 국가 미래 로드맵을 만드는 중장기 재정전략기능을 강화할 강력한 의지를 갖춘 인물인지도 알 길이 없다.
심지어 지금의 정책 여건은 과거 노무현 정부 때보다 열악하다. 모든 국무위원들의 1박2일 끝장토론으로 국가 재원 배분을 도출하는 프로세스도 없다. 기획처가 마련한 정부지출 계획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며 예산당국과 정책수요자인 국민을 연결시켜 주는 공공기관에 대한 권한도 재경부로 넘겨준 상태다.
이틀 간에 걸친 파상 공세를 예고했던 야당은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19일 하루만 열기로 여당과 잠정 합의했다. 다만 모든 의혹을 파헤칠 수 있도록 충분한 질의를 보장하기로 했다. 이럴수록 청문회 준비 과정이 의혹을 방어하겠다는 식으로 가선 안 된다. 이 후보자 스스로가 자신의 인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분명히 답할 수 있을 때 18년 만에 부활한 기획처도, 기획처 장관도 그 존재 이유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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