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한반도 24시]여덟살에 후계자 된 김정은, 그리고 그의 딸

권오석 기자I 2023.03.05 17:12:23

北김정은 딸 김주애 공개활동 하면서 후계자 논쟁
여러 억측 난무하지만 후계자 군에 있는 것 분명
선대 수령이 간택시 남녀 구분 없어…김정은 건강 변수

[고유환 통일연구원 원장]지난해 11월 김정은 총비서의 딸 김주애가 공개활동을 시작하면서 후계자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과연 김주애가 김정은의 후계자로서 공개 활동을 하는 것인지, 미래세대의 안전을 담보하는 전략국가 지도자의 이미지 연출 차원의 딸 공개인지, 딸을 가진 가정의 가장으로서 정상국가 지도자상을 내세우고 외부 세계와의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 전달 차원의 연출인지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주애가 지난 석 달간 군사부문, 스포츠 행사, 건설현장 등 7차례 공개행보를 하고, ‘존귀하신’, ‘존경하는’, ‘사랑하는’ 등의 수식어와 함께 ‘백두혈통 결사보위’ 구호와 ‘사랑하는 자제분이 제일로 사랑하는 충마’라며 김주애가 타는 말에 대한 공개 언급, 우표발행 등은 후계구축과 관련한 징후로 볼 수 있다.

1984년 1월 8일생인 김정은의 나이 40세에 후계를 공식화하는 것은 지나치게 빠르고 후계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인 북한에서 여성 지도자가 나오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 후계자로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후계와 관련짓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선대 지도자들의 후계구축 논리와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 승계가 이뤄질 때 북한이 내세운 후계자론은 ‘혈통 계승론’, ‘혁명 계승론’, ‘김일성 화신론’ 등이 있다. 북한은 백두산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한 백두혈통이라야 후계자가 될 수 있고, 제국주의가 남아 있는 한 혁명은 계속돼야 한다면서 김일성 가계가 대를 이어 수령제 국가를 지도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김일성 화신론은 김일성의 통치철학과 스타일에 따라 수령제 국가를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 화신론은 ‘김일성 영생론’과 함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조선로동당=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동일시하는 담론의 근거로 활용된다.

김정일은 계모인 김성애가 낳은 이복동생들과의 치열한 후계투쟁을 거쳐 이른바 ‘곁가지’들을 물리치고 당내 유일사상체계 구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4년 2월 당 원로들에 의해 후계자로 추대됐다. 이후 김일성 사망 때까지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공동정권을 운영했다. 당내 후계지명 이후 김정일은 후계수업과 동시에 사실상 실권자로 20여년간 후계체제를 구축해나갔다. 김일성 사후 ‘고난의 행군’이라는 어려움 속에도 정권과 체제를 유지한 것은 오랜 후계구축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2008년 8월 김정일의 뇌졸중 발병 이후 2009년 1월 8일 25살 생일 때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경우 후계자가 되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있었지만, 김정은의 경우는 아버지 시대에 만들어 놓은 후계논리에 따라 선대수령이 지명하는 방식으로 간택됐고, 북한 주민들은 이를 ‘관습헌법’처럼 받아들였다.

김정일의 후계자 선택 기준은 수령체제를 잘 이어갈 지도자의 자질이었다. 세 아들 중 지도자 자질을 보였던 김정은을 8세 때 후계자로 내정했고, 권력핵심에서는 김정은을 ‘샛별대장’이라고 부르고 ‘발걸음’이란 찬양 노래를 만들어 척척척 발걸음 소리를 후계자 등장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김정은으로의 후계구축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은 ‘김정일의 요리사(2003)’란 책을 쓴 후지모토 겐지이다. 김정은 후계가 외부에 공식화된 것은 대만 사진작가 `후앙 한밍`이 2009년 9월 북한에서 찍은 포스터 사진을 공개하면서부터다. 포스터에는 “장군복, 대장복 누리는 우리 민족의 영광, 만경대 혈통, 백두의 혈통을 이은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라는 문구와 함께 김정은 찬양 노래 ‘발걸음’의 가사가 적혀 있었다. 이때까지 김정일의 아들 중 한 명이 후계자가 될 것으로 보았지만 3남인 김정은으로의 후계를 정확히 예측한 기관과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김주애의 이른 등장으로 여러 억측이 난무하지만 김주애가 후계자 군에 있는 것은 분명하고, 지도자의 자질이 있다면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도 성립하기 어렵다. 수령제가 제도화됐다고 본다면 선대 수령이 간택하면 남녀 구분 없이 후계 수령이 될 수 있다. 다만, 김정은의 갑작스런 유고가 발생할 경우 야심가들이 김주애를 수령으로 옹립해 놓고 집단지도체제로 섭정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왕위계승처럼 북한의 후계문제는 최고지도자의 건강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변수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