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그는 지난달 8일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이후 36일 만에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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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표는 “뉴스를 검색해봐도 2004년도에 정동영씨가 제일 먼저 쓴 기록이 있을 뿐 그전에 사용되지도 않던 용어”라며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유래가 있는 용어인 선당정치라는 용어는 공교롭게도 김정은이 휴전선 이북에서 지금 사용하는 신조”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당후사란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개인의 생각을 억누르고 당 안위와 안녕만 생각하란 이야기일 것 같다”라며 “이렇게 말하고 보니 북한에서 쓰이는 그 용어와 무엇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양두구육이라는 탄식은 사실을 저에 대한 자책감 섞인 질책이었다”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판 사람은 바로 저였다”라며 “선거 과정 중에서 그 자괴감에 몇 번이고 뿌리치고 연을 끊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겪는 과정에서 어디선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차 그들이 저를 그 XX라고 부르는 걸 전해 들으면서 ‘그래도 선거를 승리를 위해서라면 내가 참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참을 인(忍)자를 세기며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며 목이 쉬었던 기억이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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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부 총질이라는 표현을 봤을 때 표현 자체에서는 어떤 상처도 받지 않았다”라며 “그저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양의 머리를 걸고 진짜 무엇을 팔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웃고 또 웃었다”라며 “사상 처음 정당이라는 것에 가입했다며 다시는 보수 정당이 이미 썩어서 문드러지고 형해화된 껍데기만 남은 반공이데올로기가 아닌 정치과제를 다뤄달라면서 당원 가입화면 캡처 사진을 보내온 수많은 젊은 세대를 생각하면서 마약 같은 행복함에 잠시 빠졌다”라고 전했다.
이어 울먹이며 발언을 이어가던 그는 “전라도에서 보수 정당에 기대를 하고 민원을 가져오는 도서벽지 주민의 절박한 표정을 보면서 진통제를 맞은 듯 바로 새벽 기차를 타고 심야 고속버스를 탔다”라고 전하면서 마스크로 눈물을 훔쳤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인사들은 연이은 선거에서 세대 포위론과 서진정책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보수가 처음으로 지키기보다는 영역 확장에 나섰던 시기이기 때문”이라며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담론을 테이블로 끌어냈고, 북한 이야기와 5.18은 폭동이라는 이야기를 술안주처럼 즐기던 일부 강성 당원들을 잠재우며 증거도 없고 허무맹랑한 부정 선거론과 같은 음모론을 손절매했기 때문에 보수가 달라졌다는 인상을 심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는 대안의 경쟁이 되어야 한다”라며 “그런데 자유한국당 시절의 모습은 지금 우리 국민의 힘의 대안이 아니다. 노루 발 못 뽑기와 삭발, 반공과 종교적 근본주의가 대안일 수는 없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 속에 틀린 것이 하나 없음에도 배신이라는 단어로 낙인을 찍고 집단린치를 했던 새누리당의 모습 또한 지금의 현실에 대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라며 “지난 2년, 우리가 선거에 연달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담는 대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