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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이체제도는 인터넷·모바일뱅킹을 이용한 전자금융거래에서 100만원 이상 자금이체 시 최소 3시간이 지나야 실제 송금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보이스피싱에 속아 이체했을 때를 대비해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고, 착오송금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2019년 12월 정식 운영된 오픈뱅킹 서비스에선 지연이체 제도가 적용되지 않아 보이스피싱 일당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실제 A은행에 지연이체 제도를 신청한 고객이라도 보이스피싱 일당이 B은행에서 오픈뱅킹을 개설, A은행 계좌를 출금계좌로 등록해 잔액을 송금하면 지연이체 제도는 무용지물이 된다.
고객입장에서 오픈뱅킹은 하나의 앱으로 모든 은행의 계좌 조회, 결제, 송금 등을 할 수 있는 편리하고 새로운 금융서비스이지만, 이러한 허점을 노린 보이스피싱 일당은 피해자 명의로 오픈뱅킹을 개설하고 다른 금융회사 계좌 잔액까지 몽땅 털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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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선 보이스피싱 예방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제도 정비 등엔 난색을 표한다. A은행 보이스피싱 담당자는 “은행은 범죄 대응기관이 아닌 사기업이기 때문에 경영이 우선이라 대응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지연이체 제도 등 새로운 방안을 마련해도 현장에선 우선순위에서 밀리니 현실적으로 홍보나 가입 유도가 어렵다”고 말했다.
오픈뱅킹에 대한 피해가 잇따르자 일부 금융회사에서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신한은행(055550)은 내달 1일부터 오픈뱅킹 서비스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범죄 대응을 위해 만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오픈뱅킹 12시간 이체제한 제도’ 서비스를 시행한다. 타 은행에서 오픈뱅킹을 가입하고 신한은행 계좌를 출금계좌로 등록할 때 12시간 동안 오픈뱅킹을 통한 이체를 제한하는 제도다. 또 오픈뱅킹 가입 후 계좌를 등록하는 것을 제한하는 ‘오픈뱅킹 지킴이 서비스’도 시행한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한 금융권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금융과 통신 제도상 허점을 활용해 종합적으로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등 보이스피싱 범죄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며 “편리한 서비스일수록 보안에 취약한 만큼 피해자가 이중, 삼중의 보안관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고, 고객의 정보와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통신사가 범죄에 노출된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