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죄송합니다. 다음 일정 때문에 시간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기사를 쓰시기 전에 먼저 술맛을 꼭 보셔야 돼요.”라는 말과 함께 박흥선 명인이 쥐어준 솔송주를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받아 들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기사쓰기에 앞서 한잔. ‘아, 다르다.’
솔송주는 찹쌀에 솔잎 그리고 봄에 나는 송순을 이용해 빚는 술이다. 병뚜껑을 열면 솔향기가 코끝에 감돈다. 살짝 단 맛이 도는 건 백세주류의 술과 일견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입안에 머금고 있으면 부드러운 맛과 구수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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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함양 산삼이 많이 알려지고 있지만, 솔송주야말로 함양이 자랑할 수 있는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부 지역에서 솔잎을 술에 담가 먹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솔잎을 주재료로 술을 대량 생산하고 있는 것은 명가원이 유일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 대표가 술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두 선생의 36대 손부인 박 대표는 시집을 오자마자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술을 빚는 것이었다고.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었고요.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어서 시어머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습니다. 제가 시집오기 훨씬 전부터도 저희 집안의 솔송주를 얻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었다네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솔송주의 맛을 알리고 싶었던 박흥선 명인은 1996년에 큰 결심을 했다. 개평마을 인근에 대형 술도가인 ‘명가원’을 설립해 솔송주의 대량생산을 시도한 것. 직감과 손맛에 의존했던 술의 제조법을 객관화하기 위한 노력은 몇 해를 두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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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솔송주는 3만리터 가량 생산·판매되고 있다. 우체국이나 택배 등을 통해 전국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인천공항 면세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판로가 다소 늘어나기는 했지만, 줄어드는 전통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에 못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는 못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일본 술인 사케를 많이 마시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알고 보면 전통주가 훨씬 맛있고 풍미가 있는데,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전통주는 왠지 고루한 것으로만 인식되는 것 같아 아쉬워요.”
그런 그에게 올초에 든든한 우군이 생겼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을 다니다 관두고 명가원에 입사한 4명의 젊은 직원들이 주인공이다.
“전통주를 배우고 싶다고 한꺼번에 찾아온 사람들이 처음엔 의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어요. 뛰어난 인재들이 왜 이걸 배우려고 할까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명가원의 술은 다른 곳과 달라서 꼭 배우고 싶다’는 그들의 진심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분들 정말 열심히 전통주를 배우고 있어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습니다.”
박 명인이 운영하는 명가원에서는 전통주인 솔송주뿐만 아니라 복분자술, 머루주와인, 복분자와인 외에 조선시대 양반층에서 마시던 녹파주(15도) 등이 있다. 또, 한 병에 180만원에 달하는 40도짜리 솔송주(철화분청사기)도 있다.
지금까지 식품명인으로 인증받은 사람들 중 술을 빚는 사람은 총 15명이다. 이중 3명이 여성인데, 박흥선 명인이 가장 젊다. 박 명인은 술 빚는 것 외에도 음식솜씨 또한 유명하다.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해 박 명인이 직접 갈비찜 요리를 선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