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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암전되고 정준일과 오랜 음악적 동반자인 프로듀서 권영찬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준일은 하얀 의자에 앉았고, 권영찬은 피아노 앞에 자리했다. 이윽고 건반이 울리자 정준일의 목소리가 조용히 그 위를 채웠다.
말은 좀처럼 없었다. ‘이안’과 ‘커즈’, ‘바램’, ‘러브 어게인’, 메이트의 ‘그리워’,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북극곰’까지 노래가 노래를 이어받았다. 여섯 곡을 쉼 없이 부른 뒤에야 정준일은 짧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관객들도 서두르지 않았다.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로 빈틈을 채우기보다 다음 소리를 기다렸다. 정준일 역시 관객과 눈을 맞추기보다는 눈을 감거나 시선을 떨군 채 노래 속에 머물렀다. 관객은 그런 정준일을 가만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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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정준일이 바라보는 여름을 닮아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보다는 바람이 산들거리는 저녁,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새벽에 가까웠다. 가볍게 스치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오래 묻어둔 슬픔을 꺼내놓듯 깊게 가라앉는 노래도 있었다. 수줍은 청춘과 지나간 사랑,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들이 여름이라는 계절 안에서 차례로 흘러갔다.
윤종신의 ‘애니’, ‘말꼬리’, ‘고요’, ‘잘했어요’, ‘넌 감동이었어’를 엮은 메들리에서는 잠시 분위기를 환기했다. ‘넌 감동이었어’의 마지막 고음을 쏟아낸 뒤에는 이번 공연을 끝으로 윤종신과 ‘굿바이’하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어진 ‘첫눈’과 ‘짝사랑’을 지나 대표곡 ‘안아줘’에서는 공연의 감정이 한층 짙어졌다. 서정적인 피아노 위로 특유의 떨림이 묻은 목소리가 얹혔다. 정준일의 20대를 함께했던 노래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펼쳐보는 오래된 편지처럼 공연장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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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푸른끝’에 이르러서는 줄곧 의자에 앉아 있던 정준일이 처음으로 일어섰다. 허리를 깊숙이 굽혀가며 고음을 쏟아냈고, ‘슬립 인 서머’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권영찬을 지긋이 바라보며 노래했다. 잔잔하게 흐르던 공연의 온도도 서서히 달아올랐다.
앙코르 ‘늦은 아침’에서는 정준일이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치던 기억을 꺼낸 그는 직접 건반을 누르며 노래했다. 권영찬의 피아노와 자신의 목소리로 시작했던 공연은 정준일의 연주와 목소리가 하나로 겹쳐지며 끝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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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이 무대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가수가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라, 노래를 건네고 관객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그 위에 포개는 방식이었다. 누구에게도 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노래에 의탁하듯 정준일은 이날 자신의 노래를 객석으로 흘려보냈다. 그 노래가 어디에 닿아 어떤 기억을 불러낼지는 듣는 사람의 몫이었다.
그래서 정준일의 소극장 콘서트는 ‘보는 공연’보다 ‘듣는 공연’에 가까웠다. 무대를 채운 것은 많지 않았지만, 잔잔한 만큼 선명했고 비워낸 만큼 풍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