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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의원과 참의원은 4일 오후 총리 지명 선거를 잇따라 열고 과반 찬성으로 지난달 29일 집권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기시다를 신임 일본 총리로 선출했다. 이에 따라 기시다는 1885년 내각제 도입 후 초대 총리를 맡은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이래 제 100대 일본 총리가 됐다.
기시다 내각도 정식 출범했다. 앞서 스가 요시히데 내각은 이날 오전 총사퇴했다. 스가 총리 재임 기간은 384일로 전후 총리 34명 가운데 12번째로 짧았다.
기시다는 신임 총리로 확정된 뒤 연정 상대인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와 새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그가 공개한 내각 구성원을 살펴보면 자신을 제외한 20명 가운데 13명을 각료 경험이 없는 ‘신인’으로 채웠다. 쇄신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자민당 실세인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의 측근들에게 요직을 몰아주고, 남은 기타 장관직에 새로운 인물들을 등용한 모양새다.
◇기시다 내각 정식 출범
일본 정부 대변인으로 컨트롤 타워 격인 관방장관은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상에게 맡기기로 했다. 히로카즈는 문부과학상 재직 당시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는 내용의 의견 광고를 미국 신문에 싣는 등 역사 왜곡에 동참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3월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회 과목에서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학습지도요령을 확정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난 2014년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는 재검토해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성 장관과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성 장관은 유임하기로 했다. 외교·안보 정책의 연속성을 위한 전략이지만, 아베 전 총리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다. 경제산업상을 맡게 될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역시 아베측 인사다.
재무성 장관은 아소 부총재의 처남인 스즈키 슌이치가 맡는다. 저출산 담당 장관에는 이번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와 경합한 노다 세이코 자민당 전 간사장 대행이, 총무상에는 가네코 야스시 전 국토교통부 부대신, 디지털 담당 장관에는 마키시마 카렌 의원이 각각 내정됐다. 신설하는 경제안전보장상에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방위정무관을 기용한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아소파가 당 주요직과 핵심 각료 자리를 독식해 기시다 파벌 내부에선 불만이 들끓고 있다고 전했다. 기시다는 지난 1일 단행한 자민당 간부 인사에서도 아마리 아키라 세제조사회장을 간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아베 측근에게 요직을 줬다.
◇경색된 한일관계 변화 주목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시다가 신임 일본 총리로 확정된 이후 축하 서한을 보냈다. 일본 총리 교체로 한·일 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인지 주목되지만, 기시다가 아베 정권에서 약 4년 8개월 간 외무상을 지냈던 데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한국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기시다에겐 내달 예정된 중의원 선거가 그의 정치 운명을 좌우하는 첫 고비가 될 전망이다. 자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해 승리할 경우 기시다는 특별국회의 재지명을 거쳐 제101대 총리로 연임하지만, 승리하지 못하면 단명 총리로 끝날 수도 있다.
기시다는 4년 임기가 오는 21일 만료되는 중의원을 이번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14일 해산하고 31일 총선거를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내달 7일 또는 14일 총선이 유력하다고 일본 언론들은 내다봤으나 기습적으로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고 새 내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만큼 유리한 국면에서 선거를 치르겠다는 속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