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인사 뉴스를 보다가 아버지가 이렇게 물으면, 설명은 길지 않아도 된다. 대통령이 하겠다고 한 일을 정부 부처들이 실제로 하도록 ‘설계’하고 특히 ‘조정’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된다.
아침에 출근하는 청년은 일자리를 걱정하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돌봄 시간을 따진다. 집을 마련하려는 부부는 대출 이자를 계산한다. 각자 다른 고민 같지만 한 집 안에서는 서로 이어져 있다. 소득이 줄면 월세와 대출이 부담되고,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하면 한 사람이 일을 줄이기도 한다. 고용·주거·금융·복지 정책이 부처별로 나뉘어 있어도, 생활은 그렇게 나뉘지 않는다.
정부의 일은 부처별로 나뉘어 있다. 청년 일자리는 고용 관련 부처가, 집 문제는 국토교통부가, 서민 대출은 금융당국이 맡는다. 각 부처는 자기 분야의 정책을 만들지만, 한 사람의 생활은 여러 정책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정책실장은 부처들이 가져온 계획과 예산을 한자리에 놓고 살펴 정부가 무엇을 먼저 할지 정리하고,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준경 신임 정책실장이 경제성장수석에서 자리를 옮긴 것은 그래서 청와대 안의 인사 이동만은 아니다. 경제 한 분야를 맡던 자리에서 경제와 사회정책 전반을 조정하는 자리로 간 셈이다. 대통령의 구상이 각 부처의 계획으로 나뉘고, 그 계획이 예산과 사업을 거쳐 사람들의 생활에 닿기까지의 과정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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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실장은 재정을 성장과 민생을 함께 뒷받침하는 데 쓰자는 ‘성장투자형 확장재정론자’로 꼽힌다. 기술과 산업에 투자해 성장 기반을 만들고, 주거·돌봄·청년 기회 같은 사회정책도 사람들의 역량과 경제활동을 돕는 투자로 바라본다. 복지를 단순히 지출로만 보지 않고, 사람이 일하고 생활을 꾸려갈 토대를 마련하는 일로 보는 셈이다. 재정건전성을 따질 때도 당장의 국가채무 숫자뿐 아니라 재정 투입이 성장과 세수의 기반을 얼마나 넓히는지 함께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말로 들으면 성장과 민생은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다. 산업에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고, 돌봄과 주거를 지원해 사람들이 그 일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구상이다. 다만 정책의 방향이 생활 속 변화로 이어지려면 중간에 여러 선택이 놓인다. 어떤 산업을 키울지, 어느 지역을 먼저 지원할지, 돌봄과 주거에 얼마나 투자할지 정해야 한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각 사업이 내세우는 필요도 저마다 다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미래대응기금’은 하 실장의 구상이 구체적인 사업으로 모습을 갖춰갈 주요 무대다. 정부는 내년에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해 청년과 성장동력, 지역, 교육·인재 분야에 재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내놨다. 세수가 예상보다 50조원 이상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되면서 신설되는 기금 규모가 무려 2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숫자를 생활의 장면으로 바꾸면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청년 지원 사업이 있다면, 그 지원이 당장의 생활비를 보태는 데 그치는지 아니면 직업훈련과 채용으로 이어지는지 살펴야 한다. 지역에 산업을 유치한다면 공장 하나가 들어서는 데서 끝나지 않고, 협력업체가 생기고 주민들이 일자리를 얻는지도 보게 된다.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일을 줄이려는 부모에게는 돌봄 지원이 곧 소득과 경력의 문제다. 월세와 대출이 빠듯한 청년에게 주거 정책은 다음 달 생활비뿐 아니라 이직이나 결혼을 계획할 여유와도 연결된다.
같은 ‘청년 지원’이라도 어떤 사업을 고르느냐에 따라 남는 것이 다르다. 당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 필요한 때가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래갈 일자리나 주거 기반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한 때가 있다. 지역에 돈을 투입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업이 끝난 뒤 그곳에 기업과 일자리가 남을지, 젊은 사람들이 굳이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될지 살펴야 한다. 기금의 이름이나 규모보다, 돈이 쓰인 뒤 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대미 투자도 숫자만 보면 우리 일상과 멀어 보인다. 3500억달러 가운데 전략투자 2000억달러와 조선협력 1500억달러로 나뉜다. 이 돈 전부가 당장 정부 예산에서 지출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에 따라 투자나 보증, 금융지원 등 방식이 다르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그렇다고 복잡한 대미 투자가 우리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 조선이나 에너지 사업을 진행할 때 국내 기업이 참여하면 일감이 생기고, 그 일감은 협력업체와 노동자의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에서 쌓은 기술과 경험이 해외 사업에 쓰이고, 그 사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열 수도 있다. 반대로 사업의 수익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투자금 회수가 늦어질 수 있다. 사업이 잘되면 어떤 기회가 생기는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위험은 어떻게 나누는지 함께 봐야 한다.
대미 투자의 성적표도 발표된 금액만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국내 기업에 실제 일감이 돌아왔는지, 기술과 인력이 쌓였는지,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나며 확인해야 한다. 큰 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정책실장이 살펴야 할 것은 그 숫자가 만들어낼 결과와 감당해야 할 위험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전후로 대미투자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투자 발표에 한미간 이견이 있자,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향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투자에 합의하지 않으면 “두 배로 청구하겠다”며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야전사령관’으로써 직접 싸우겠지만, 이를 통제하고 따지는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게 하 실장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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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실장은 경제정책을 연구하고 설명해 온 학자 출신으로, 이 대통령에게 경제 방향을 조언하는 ‘경제책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경제의 흐름을 읽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과, 여러 부처의 계획을 모아 정부의 선택으로 만드는 일은 다르다. 정책실장은 부처별 검토가 엇갈릴 때 쟁점을 정리하고, 무엇을 먼저 추진할지 결정해 실행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대미투자는 이런 조정 역할이 드러날 현안이다. 투자 규모를 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안보실과 산업·재정 부처가 긴밀히 협의하며 사업의 수익성과 투자금 회수 가능성, 국내 기업과 일자리에 돌아올 몫, 위험을 나누는 방식까지 따져야 한다. 미국이 내민 계산서만 받아드는 게 아니라, 우리 기업과 재정에 무엇이 남는지를 담은 ‘우리 쪽 계산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일도 정책실장의 몫이다.
사실 그가 경제수석으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 실장이 경제성장수석으로 일하던 시절 회의에서 결론을 명확히 매듭지어 주지 않아 실무자들이 답답해한 적이 있다는 부처 관계자들의 평가도 적지 않다. 다만 정책실장으로서 맡을 일의 범위가 넓어진 만큼, 앞으로는 어떤 정책을 우선순위에 놓고 부처들의 일을 어떻게 맞춰가는지 즉 ‘조정’ 능력이 하나씩 드러날 것이다. 학자로서 제시해온 생각이 정부의 선택과 실행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그때 확인될 수 있다.
아버지에게 정책실장은 여전히 낯선 자리일지 모른다. 이름만 들어서는 누가 맡든 내일의 살림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와 아이 돌봄, 주거비와 산업 투자가 정부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들여다보면 그 자리가 하는 일도 조금씩 보인다. 회의실에서 정한 우선순위는 시간이 지나 누군가의 일터와 집, 하루의 시간표에 닿는다.
“그래서 그게 우리 집하고 무슨 상관인데?”
하준경의 구상은 이제 예산과 사업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물론 고꾸라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정 투입이 당장의 소비를 돕는 일회성 지원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런 지원이 급한 살림에 보탬이 되는 때도 있지만, 그 돈이 일자리와 돌봄·주거의 기반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살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이 어떤 일자리를 만들고, 대미 투자가 국내에 어떤 기회를 남기며, 돌봄과 주거 정책이 누군가의 하루를 어떻게 바꾸는지 지켜볼 일이다. 정책실장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건 결국 그가 맡은 일이 우리 생활에 어떤 모습으로 닿을지 알고 싶어서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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