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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급난 지속에 車·반도체업계 '진퇴양난'

신민준 기자I 2021.11.05 10:06:33

[車반도체 대란에 손 놓은 정부]②
車업계 올해 3분기 생산량 76.2만대…금융위기 이후 최소
車반도체 해외 의존율 98% 달해…내재화도 초기단계
반도체업계, 미세공정 경쟁·생산능력 한계로 車반도체 여력 無
"정부 핀셋 지원과 NXP 같은 車반도체 전문기업 육성 시급"

[이데일리 신민준 배진솔 기자]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자동차와 반도체업계 모두 난처한 입장이다. 자동차업계는 차량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늘리기 위해 당장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증설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동차와 반도체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이 부족한 차량용 반도체를 선별해 집중지원하는 정부의 핀셋 정책 시행과 더불어 독일 인피니언과 네덜란드 엔엑스피(NXP) 등과 같은 차량용 반도체 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반도체 공급난에 車생산 타격 본격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경제 한 축을 담당하는 자동차업계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4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국내 완성차 5개사(현대자동차(005380)·기아(000270)·쌍용자동차(003620)·르노삼성자동차·한국지엠)의 자동차 생산량은 총 76만 1975대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92만 1583대) 대비 20.9% 감소한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생산량이 급감한 2008년 3분기(76만 121대) 이후 13년 만에 최저치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지역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심해져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등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장이 셧다운(폐쇄)된데다 TSMC 등 차량용 반도체 위탁생산 파운드리들의 주문 폭주와 생산 공장 화재 등으로 위탁생산이 제한된 탓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차량용 반도체 해외 의존율이 98%에 달할 정도로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더 큰 영향을 받았다. MCU 등 주요 차량용 반도체 국내 공급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점도 한몫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가 더 길어질 경우 국내 경제에도 악영향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전기자동차 등 미래차시장 선점 경쟁에서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완성차업체가 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해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현대차그룹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012330)가 지난해 현대오트론 반도체 사업부문을 인수한 것이 전부다. 현대오트론은 파워트레인 전력반도체와 GDI엔진에 사용되는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했고 차량 내 종합제어장비인 ECU용 반도체를 양산하기도 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모비스가 현대오트론 반도체 사업부분의 기존 차량용 반도체 분야 개발 역량을 강화한 후 시스템과 전력, 고성능 반도체 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차량용 반도체를 내재화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내연기관 차량 한대에 200개 이상 들어가기 때문에 완성차업계가 이를 내재화하기가 쉽지 않다. 차량용 반도체기업 인수합병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막대한 인수 비용과 글로벌 경쟁당국 기업 결합 심사 통과도 미지수다.

◇車반도체 생산라인 증설 어려운 국내 파운드리

삼성전자(005930)DB하이텍(000990) 등 국내 반도체기업들은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개발·생산하기보다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로부터 위탁 받아 생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안전성 문제 등으로 진입장벽이 높은데다 마진율이 낮아 수익이 적기 때문이다. 현재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인피니언, NXP, 일본 르네사스 등이 과점한다.

특히 세계적인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세계 1위 파운드리 TSMC와 미세공정 경쟁에 돌입한 영향으로 차량용 반도체 생산 등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미세공정 장비와 연구개발(R&D) 비용에 수십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인 탓에 파운드리 전문기업인 TSMC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고수익 미세공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주요 차량용 반도체는 45나노(㎚) 또는 65나노 등 일명 레거시 공정으로 불리는 오래된 공정에서 생산한다. 최신식 미세공정을 늘리는 삼성전자로서는 생산라인을 확대하기가 녹록지 않다. DB하이텍과 키파운드리 등은 생산능력(캐파)에 한계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로 생산라인을 100%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반도체업계에서는 결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주요 차량용 반도체를 선별해 집중 지원하는 것과 더불어 국내 차량용 반도체 전문기업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국내 자동차기업들이 필요한 주요 차량용 반도체를 선별해 지원 또는 공급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반도체 수급을 문제를 기업들에만 맡기지 말고 외교적인 채널 등을 동원해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반도체 등 미래차에 사용될 것으로 보이는 차량용 반도체의 국내 생태계 조성 등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며 “앞으로 미래차시장 경쟁에서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 공급 여부도 경쟁력의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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